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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음료로 코카콜라 무릎 꿇리려는 사나이, ‘조운호의 인생’
  • 2018.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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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식품 최연소 CEO 출신 조운호 하이트진로음료 대표의 삶
-불행 속에서도 항상 ‘긍정’ 택해…‘언젠가는 세상이 알아주더라’
-시작하면 ‘끝장’ 보는 불도저, 집요한 분석ㆍ통찰력이 경쟁력
-‘블랙보리’, 노슈거ㆍ노카페인 프리미엄 곡차로 글로벌 공략

어스름한 박명(薄明)을 헤치고 집을 나섰다. 새벽 4시 반 매일 같은 시간이었다. 어둠과 빛이 붙은 암연(闇然)은 태초의 우주를 만나는 것 처럼 설렜다. 내복을 두 세겹 씩 껴입어도 이가 덜덜 떨리는 한겨울에도 변함 없었다. 버스를 타면 자갈치 아지매들로 금세 가득찼다. 총천연색 몸빼를 입고 다라이를 짊어진 아지매들은 언뜻 전투에 나서는 군단과도 같았다. 모두 생존이라는 사명을 진 것 마냥, 억척스럽고 비장했다. 이들의 기운을 받으며, 덜컹덜컹 버스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30~40분을 내달리면 서면 학교에 도착했다. 5시를 넘긴, 경비 아저씨도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시간. ‘오늘도 일등이다.’ 세상을 깨우는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새벽과 아침 사이의 문지방을 넘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열여덟 소년, 교복 왼쪽 가슴팍엔 ‘조운호’ 석자가 붙어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매일 1등으로 학교에 갔습니다. 이 습관은 은행을 다닐 때도 그리고 사장이 돼서도 똑같아요.”

최근 경기도 기흥 하이트진로음료 본사에서 만난 조운호(57) 대표의 말이다. 1등을 하려면 그만큼의 절대적인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만고의 법칙을 예순 평생 가까이 실천해오고 있다.

“그 대신 퇴근은 칼같이 합니다. 우리 직원들 몇시에 가는 지 나도 몰라요. 내가 제일 먼저 나가니까….”

출근도, 퇴근도 1등이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조 대표. 그는 퇴근 후 수십년째 영어, 철학, 국악, 연극, 108배 등을 배우며 열정의 ‘하루 이모작’ 삶을 살고 있다. 


‘히트상품 제조기’, ‘생각하는 불도저’ 등의 별칭으로 불리는 조운호 대표. 긍정과 열정의 힘으로 인생역경을 극복하며 식품업계 성공신화를 써가고 있는 이다. ‘내게 오는 일은 절대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그의 인생 철학은 경영자로서의 리더십 색깔의 한 단면을 엿보게 한다.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우리 전통음료로 코카콜라를 이기겠다= 조 대표의 수식어는 몇가지 단어로 충분하다. 아침햇살, 초록매실, 하늘보리, 자연은…. 그가 만든 제품이다. 그리고 또 하나, 만 38세의 웅진식품 최연소 대표이사. 이 화려한 수식은 그가 얼마나 치열하고 바쁜 인생을 거쳤는지 보여주는 성적표와 같다. 지금이야 국민음료가 된 제품들이지만, 이것들은 모두 난산 끝에 빛을 본 자식들과 같다.

“코카콜라를 이겨보겠다는 심산이었죠. 커피, 콜라, 주스 등 외국 음료가 판치는 마당에 ‘우리 것’은 왜 없을까라는 역발상으로 시작했습니다. 결코 쉽지 않았어요. 쌀음료를 출시하겠다 할때는 ‘회사 말아먹을 놈’이란 소리까지 들었으니까요.”

‘맛좀 보시라’며 임원에게 건넨 아침햇살 샘플은 바닥에 내팽개쳐 졌지만, 그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우리 토종재료를 이용한 아이디어부터 넉자배기로 통일한 제품명, 마케팅 전략까지 모두 그에게 나왔다. 조 대표가 만든 음료 시리즈는 연이어 히트상품에 오르며 웅진식품의 고속 성장을 견인했고 1999년 38세의 나이로 상무ㆍ전무를 건너뛰고 그룹 최연소 최고경영자(CEO)의 자리에 올랐다. 이사 이상의 임원 4명, 차장 이상 간부들 중에서 조 대표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 CEO 성공스토리를 담은 MBC ‘성공시대’에선 그에게 ‘생각하는 불도저’라는 별명을 달아줬다. 음료 하나를 만들기 위해 인류와 세계 식음 역사를 줄줄꿰고 자체 이론까지 만든 그의 열정을 대변한 별칭이다. 멀쩡히 다니던 은행을 관두고 호기롭게 시작한 음료회사에서 그렇게 성공했다. 그가 대표 취임 당시 부채 700억원, 누적적자 450억원이던 웅진식품은 2년만에 매출 2600억원대의 흑자기업으로 변모했다.

주변 칭찬도 따랐다. 전 이화여대 명예교수이자, 초대 문화부장관을 역임했던 이어령 선생은 “누군가 한국을 구원해 주기라도 할 듯 남 탓만 하는 세상속에서 조운호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패기와 열정을 가진 자”라며 “우리음료를 만드는 일은 시인이 시집 100권을 내는 것보다 더 큰 문화운동”이라고 평했다.


▶언제나 ‘긍정’을 택했다=그의 지독한 근성 이면에는 운명을 기꺼이 수용했던 담대한 성격이 한 자리한다.

“운호야, 네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중학교 시절,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어린 운호를 앉혀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3남1녀의 장남. 아버지를 대신할 사람은 그 밖에 없었다. 지우개로 벅벅 문지르듯, 법관의 꿈을 인생계획표 밖으로 밀어냈다. 식구들을 부양해야 하는 현실만 시험지 위에 남은 문제처럼 또렷했다. 열일곱, 부산상고에 진학했다. 돈을 벌기 위한 선택이었다. 공부 꽤나 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온 이들이 많았다. 친구 다섯과 한 무리가 돼 ‘쪽박’이라는 이름을 짓고 어울렸다.

“고2가 되자 쪽박 친구들이 모두 진학을 하겠다고 나섰어요. 저도 욕심이 났죠. 그때 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했더니 야간대학을 추천해줬습니다. 진학과 취업,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목표가 됐고 그때부터 매일 1등으로 와서 공부만 했습니다. 화장실도 참아가며 소풍을 갔다온 날도 도서관에서 살았죠.”

코피를 쏟았다. 한 두 번이 아니라 연일 코피가 터졌다. 소주잔 만큼 피를 흘리면 ‘열심히 했구나’ 싶었다. 코피가 나지않는 날은 ‘소홀했다’ 싶어 잠도 안자며 공부했다. 그러면 기어코 다음날 코피가 났다. 묘한 쾌감과 안도가 동시에 찾아왔다. 친구들이 ‘오뚝이’, ‘철인’이라 혀를 내둘렀다. 집요한 근성은 그가 신에게 받은 가장 큰 재능이었다.

“원치않는 상황이 와도,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합니다. 그 다음엔 뒤를 돌아보지 않고 하나에 매진합니다.”

고교 졸업 무렵, 쪽박모임 친구들 다섯은 모두 재수를 하게 됐고 그는 당시 제일은행 입사와 동시에 경성대학교 야간대학에 합격했다. 친구들에겐 좀 미안했지만, 최선을 다하면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배웠다.

군 시절에도 근성은 필요했다. 최전방, 강원도 양구.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자대 훈련소서 훈련병 시절을 났다. 지옥같은 얼차려가 이어지며 탈영병까지 생겼다.

“‘이게 6주만에 군인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구나, 내 판단은 필요없는 곳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상식이 통하지 않는 비상식의 세계라면 받아들이는 방법 밖에 없었죠.”

이후 거짓말처럼 훈련이 수월해졌다. 훈련기간이 끝난 후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21사단 사령부에 착출됐다.

“언제나 ‘긍정’을 택했는데, 이는 불행을 탄력적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을 준다고 배운 것이죠.”

▶블랙보리의 글로벌화, 그 다음을 꿈꾼다=웅진식품 사장에서 부회장까지 됐던 그는 스스로 사직서를 내고 방향을 틀었다. 이후 3년간 세라젬 의료기에 몸담았다 ‘얼쑤’라는 회사를 창업했고 토종재료로 건식음료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해 2월 하이트진로음료의 러브콜을 받고 다시 기업의 대표로 돌아왔다. 과거 웅진식품 시절과 달라진 점은 ‘맘대로 해보라’고 회사가 멍석을 깔아준다는 것이다. 그는 ‘블랙보리’로 보란듯이 자신의 진가를 입증하고 있다.

“블랙보리는 국내 최초 100% 국내산 검정보리를 이용, 잡미와 쓴맛을 최소화하고 보리의 진한 맛을 살린 음료입니다. 갈증해소는 물론 푸드 페어링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노슈거, 노카페인이라는 점도 글로벌 트렌드와 맞아 떨어집니다. 곧 글로벌 곡차 트렌드를 리딩할 것입니다.”

블랙보리는 현재 교민 사회 중심으로 10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그의 말대로 글로벌 히트음료로서의 가능성도 점쳐진다. 입점 자체만으로 신뢰를 인정받는 미국의 넘버원 유기농마켓 ‘트레이더조’(Trader Joe’s)에 8월 정식수출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전역에 500여개의 체인을 보유한 트레이더조를 시작으로 월마트(Wal-Mart), 타깃(Target) 등 대형 유통채널을 공략해나갈 계획이다.

“18살 대학과 취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잡기에 성공했고 28살엔 잘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웅진식품으로 옮겼고 38살엔 적자기업의 사장 자리에 갔고 48살엔 불황 속에서 창업을 했어요. 내년이면 58세가 됩니다 아마도 2019년엔 ‘블랙보리’로 새로운 일이 벌어질듯 합니다.”

이렇듯 20여년 전 아침햇살을 만들었던 조 대표는 여전히 세포분열 중이다. ‘코카콜라를 뛰어넘는 우리음료를 만들겠다’는 목표도 현재 진행형이다.

“어릴 적부터 뭐든 안된다 생각한 적이 없어요. 글쎄, 왜 그런지 나도 이상해요. 그런데 정말 좌절하지 않고 상황을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는데 세상이 알아주더라고요. 우리 젊은이들 헬조선이라며 희망을 잃은 것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모든 것이 완전히 좋았던 시절은 없었어요. 현실을 수용하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면 길은 열립니다.”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다는 조 대표의 말에선 진심이 묻어나온다.

조 대표의 시선은 또 앞에 가 있다. 블랙보리, 그 이후의 히트작을 준비 중이다. 8자와 묘한 인연이 있다는 그의 말처럼, 10년뒤 ‘68세의 조운호’는 또 무슨 일을 낼까.

김지윤 기자/summ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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