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링의 시작은 ‘피해야 하는 조합’
“레드와인의 타닌, 화이트와인 산도
디저트와인 당도…페어링의 핵심”
[리얼푸드=육성연 기자] 한때 고급 레스토랑이나 와인 전문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와인 페어링이 이제는 일상 식문화의 트렌드가 됐다. 와인 페어링의 대중화가 이뤄지며 잘못된 조합으로 비싼 와인의 맛을 해치는 상황도 벌어진다. 전문가들은 어떤 음식과 ‘잘 맞는가’보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페어링의 시작’이라고 조언한다. 어울리는 요리는 와인의 종류에 따라 각각 다르지만, 분야별로 맛을 해치는 조합은 공통적이다.
홍광현 와인 전문가는 “‘레드 와인=붉은 고기, 화이트 와인=흰살 생선’이란 조합이 널리 알려졌지만, 붉은 색·흰색만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실패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와인 테이스팅 교육업체 유어쏨의 대표이자 캘리포니아 와인 소믈리에 앰배서더(홍보대사)다.
포인트는 레드 와인의 타닌, 화이트 와인의 산도, 디저트 와인의 당도다. 이 세 가지 속성이 음식과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이해하면 페어링이 쉬워진다.
레드와인+기름진 생선·회·매운 음식…비린내와 열감 ↑
우선 레드 와인 페어링에서 주의해야 할 핵심은 ‘타닌(Tannin)’이다. 주로 포도 껍질과 씨앗에서 나오는데, 특히 적포도 껍질에 많다. 입안에 떫은 맛을 남긴다. 스테이크처럼 육류의 단백질과 결합할 때는 부드럽게 중화되지만, 기름진 생선과의 조합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홍광현 대표는 “고등어나 삼치, 청어와 같은 기름진 생선은 타닌이 높은 레드 와인과 만났을 때, 와인 속 철 성분이 생선 기름의 지방 산화를 촉진하기 때문에 비릿함이 두드러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날 생선인 회나 굴, 조개류 역시 레드 와인과 함께 먹으면 금속성(쇠맛)의 불쾌한 뒷맛을 남긴다.
매운 음식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캡사이신을 넣은 매운맛은 타닌의 쓴맛과 알코올의 열감을 동시에 증폭시킨다. 홍 대표는 “불닭이나 엽기 떡볶이처럼 매운맛이 강한 음식과 알코올이 높은 레드와인의 조합은 입안이 아플 정도로 강렬한 자극을 준다”고 했다.
의외의 복병은 초콜릿이나 샤인머스캣처럼 단맛이 강한 음식과 드라이한 레드 와인과의 조합이다. 드라이한 레드 와인의 감춰진 쓴맛을 드러내게 만든다.
화이트와인+초무침·레몬 드레싱…산도 무너뜨려
화이트 와인 페어링의 핵심은 ‘산도’다. 음식의 산도가 화이트 와인보다 높으면 와인의 산미가 상대적으로 억눌린다. 밋밋하고 힘없이 느껴진다. 신맛이 강한 냉채류나 초무침, 레몬즙 요리, 새콤한 드레싱 샐러드가 대표적인 예이다. 화이트 와인은 음식의 산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산도를 가진 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적합하다.
바디(Body·Weight)감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페어링에 실패한다. 스테이크와 갈비처럼 풍미가 강한 붉은 고기는 화이트 와인의 가벼운 바디감을 압도한다. 훈제 베이컨이나 살라미 같은 육가공품도 마찬가지다. 강한 육향에는 화이트 와인의 섬세한 풍미가 사라진다.
홍 대표는 “프랑스 루아르 지역의 뮈스까데와 같은 가벼운 화이트 와인은 연어 회처럼 기름지고 무거운 음식에서 존재감을 잃는다”라며 “반대로 오크 숙성한 미국 나파 지역의 샤르도네처럼 무거운 바디감의 화이트 와인은 광어나 도미회의 맛을 압도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가벼운 화이트 와인이라고 하더라도 산도가 높다면, 무겁고 기름진 음식을 먹은 후 입안을 정돈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디저트와인+달콤 디저트…당도 충돌
디저트 와인은 높은 당도가 특징이다. 고급 디저트와인인 헝가리의 토카이 아수부터 포르투갈의 포트 와인, 프랑스 보르도의 소테른, 독일·캐나다의 아이스와인, 이탈리아의 모스카토 다스티 등이 유명하다.
페어링에서 중요한 요소는 당도의 ‘강도’다. 디저트 와인보다 더 달콤한 음식은 최악의 선택이다. 홍 대표는 “인간의 미각 수용체는 강한 단맛에 노출되면 일시적으로 당도 민감도가 낮아지는 적응 반응을 일으킨다”라며 “음식의 당도가 디저트 와인보다 높으면 뇌는 와인의 단맛을 거의 인지하지 못하고, 숨어 있던 산도와 알코올의 쓴맛만 도드라져 밋밋하게 느껴진다”라고 설명했다. 달콤한 케이크 앞에서 고가의 드라이 샴페인은 레몬 탄산수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와인 한 잔이 최고의 만찬을 만들기도 하고, 어울리지 않은 음식이 와인의 맛을 망치기도 한다. 홍 대표는 “성공적인 와인 페어링을 위해서는 ‘잘 어울리는 조합’보다 ‘피해야 할 조합’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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