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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의 역습, 식탁의 배신]<수산편③>“오징어, 해방 이후 가장 적게 잡힌다”
  • 2018.01.22.
-울릉도 오징어 어획량 급감...최대치 1993년의 10%도 안돼
-어민들, 한목소리로 “해방 이후 가장 적다”
-수온 상승...오징어 어장 울릉도 북쪽으로 이동
-난류성 어종 대거 출현...바다 생태계가 달라졌다
-오징어, 사라진 명태 전철 밟을까 우려

[리얼푸드=(울릉) 박준규 기자] 울릉도에서 매년 여름 열리는 ‘오징어 축제’. 2001년부터 개최된 섬의 유일무이한 관광 축제다. 축제 기간에만 1만5000여명의 관광객이 바다를 건너온다. 경상북도로부터 우수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말 열린 행사에선 ‘오징어 축제에 정작 오징어가 없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임재규 울릉군청 문화관광체육과 과장은 “딜레마에 빠졌다”고 말했다. “지난 축제 기간 중에 오징어가 워낙 안 잡혀서 행사 진행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올해 축제를 (그나마 오징어가 잡히는) 10월로 미루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그때로 하면 파도가 높아서 배가 못 뜨는 날이 많아 걱정입니다.”

‘오징어 경제’로 먹고 살았다는 울릉도 사람들, 이젠 “호시절은 다 지나갔다”고 말한다. 기후변화의 습격으로 동해 바다 환경이 바뀌면서다. 오징어 축제서 오징어를 보기가 힘들어진 게 단적인 사례다. 오징어 경제는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다. 섬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지난달 22일 울릉도 저동항에서 만난 살오징어. 어민들이 야간 조업에서 잡은 것들이다. 어민들은 “오징어가 씨가 말랐다” 하소연했다.

지난달 22일 오전 7시, 울릉도 저동항. 야간 조업을 마친 어선들이 속속 입항하고 있었다. 밤새 불을 밝히며 오징어를 유혹하던 집열등이 흔들렸다. 선장이 뱃머리를 어판장에 바짝 갖다붙이자 선원들은 잡은 오징어를 옮겼다. 가로 50㎝, 세로 20㎝짜리 파란 플라스틱 상자가 열댓개가 금세 하역장에 쌓였다. 상자마다 오징어가 스무 마리씩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많이 잡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 정도면 완전 적자입니다” 어선들 상황을 살피던 이성용 울릉수협 상무가 말했다. 이 상무는 “9.7t짜리 배가 하룻밤 조업하면 기름값과 인건비로 150만~200만원 들어요. 오징어 열댓 상자로는 남는 게 없어요”라고 하소연 했다. 지난 12월 말 기준, 갓 잡은 오징어 한 상자의 낙찰가는 5만원 내외다.

9.77t짜리 ‘영신호’의 김영철 선장은 “모처럼 바다가 순해서 사흘 연속 (조업) 나갔는데 오징어가 없다”고 말했다. 피곤한 기색에다 실망감이 그의 얼굴에 짙게 뭍어있었다.

▶늘어나는 ‘바다 속 여름’ = 울릉군청과 울릉수협에 따르면 2016년 울릉도 어민들이 잡은 오징어는 총 986t. 어민들 입에선 “해방 이후 가장 적은 양”이라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역대 가장 많은 오징어가 잡혔던 해는 1993년으로, 그해에만 1만4414t을 건졌다. 2005년까지도 연간 어획량은 8000~1만t 수준을 유지했다.

어업도 농사와 같아서 바다 사정에 따라 풍년과 흉년이 갈린다. 하지만 2006년 이후부터는 어획량 감소세가 고착화된 양상을 보인다. 기후변화의 손길이 뻗친 동해에서 바다 사정이 과거보다 부쩍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과거 울릉도 어민들은 겨울에 오징어를 잡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5~6월께 조업을 시작해 10월 말에는 그해 오징어 잡이를 마무리했다. 조업의 절정은 8~9월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어기(漁期)는 3개월 정도 뒤로 밀렸다. 11~12월까지도 어민들은 고깃배를 몰고 바다로 나간다. 


원인은 수온 상승이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울릉도ㆍ독도 해양과학기지에서 연구활동을 하는 김윤배 박사는 “오징어는 바다 온도가 12~18℃에서 잘 자란다. 하지만 울릉도 주변 해역의 표층(50~100m) 온도가 20℃에 달하는 날이 60일 가까이 늘었다. ‘바다 속 여름’이 늘어나면서 점점 오징어가 머무르기 어려운 조건이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오징어 어획이 최저치를 기록한 2016년 표층수온이 이례적으로 높았다. 한 어민은 “오징어가 녹는다”고 표현했다. 울릉도에서 잡은 오징어가 동해 전체 오징어 어획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3%(1982년)에서 2.8%(2015년)로 떨어졌다.

겨울철에 조업이 이뤄지면 조업일수가 뚝 떨어지는 게 문제다. 겨울철 동해의 기상은 변덕이 심해서 툭하면 풍랑특보가 발효된다. 기상청에 따르면 울릉도 해역이 포함된 ‘동해중부먼바다’에 풍랑특보가 내려진 날은 8월엔 1~3번 정도지만, 11월로 접어들면 최대 8일까지 늘어난다. 특보가 떨어지면 출항을 할 수 없다. 어민들로선 말그대로 공치는 날만 늘어난 것이다.

배에서 내린 오징어는 그 자리에서 바로 경매에 부친다. 어획량이 적어서 상대적으로 낙찰가는 높다.

▶멀어진 황금어장 = ‘울릉도는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조경수역으로, 어류가 몰려 사는 황금어장이다.’ 한국지리 교과서에서 읽었던 이 문장은 이젠 철 지난 얘기다.

회유성(回遊性) 어종인 오징어는 제주도 주변 바다에서 태어나 울릉도 주변에서 성어기를 보낸 뒤 다시 태어난 곳으로 내려와 알을 낳는다. 과거엔 대마 난류가 울릉도 주변에서 리만(Rieman) 한류와 만났다. 따뜻하고 차가운 물이 한데 뒤섞이며 오징어가 살기에 적당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온난화의 영향으로 대마 난류의 세력이 과거보다 북쪽으로 확장했다. 해류가 움직이자 오징어도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북상했다. 동해의 북한수역과 대화퇴(大和堆) 어장에 오징어가 풍부해진 배경이다. 한일 공동수역에 있는 대화퇴 어장은 울릉도에서 북동쪽으로 370㎞쯤 떨어져 있다.

김형수 울릉수협 조합장은 “울릉도 배들은 대개 10t 미만의 소형 선박이라 경상북도 연안에서만 조업이 가능하다”며 “대화퇴까지 가서 조업하는 건 육지에서 떠난 수십t짜리 대형 선단이나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현재 울릉군청에 등록된 어선은 140여척. 90% 이상이 배수량 10t 내외의 소형 고기잡이배다.

기상청이 펴낸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수온 상승에 따라 서식지가 북으로 이동하는 대표적인 어종이 살오징어, 전갱이, 정어리, 삼치, 방어 등이다. 반대로 남쪽으로 내려가는 어종은 멸치다.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이동이다.
할복작업(내장을 꺼내 세척하는 일)을 거친 오징어는 나무 막대에 걸어 말린다.

▶오징어가 떠난 자리 = 오징어가 떠난 울릉도 주변의 바다엔 난류성 어종들이 대거 출현했다. 울릉도ㆍ독도해양과학기지 대원들은 섬 주변 해역에서 해마다 새로운 어류를 관찰한다. 23~24℃쯤 되는 고수온에서 서식하는 어류인 자리돔, 쥐치, 돌돔, 참돔 등이 대표적이다. 과거엔 제주도 주변이나 동중국해 등 따뜻한 바다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것들이다.

동해 곳곳에선 예전에 보기 어려운 의외의 어종이 그물에 걸리기도 한다. 아열대종인 파란고리문어가 대표적이다. 2012년 제주도에서 처음 관찰된 이 문어는 지난해 거제도와 울산 앞바다에서도 등장했다. 김윤배 박사는 “기존의 터줏대감 어종이 사라진 자리를 전에 없던 어종이 채우고 있다. 우리나라 바다 속 환경이 달라졌다는 분명한 증거”라고 말했다.

현재 오징어의 상황은 ‘명태’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70~80년대까지 동해의 대표 어종이던 명태는 이제 우리 바다에서 종적을 감췄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1981년 동해에서 잡은 명태는 14만t에 달했지만, 2000년대 들어 어획량은 100t대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동해에서 난류의 영향력이 확장하면서 명태의 서식지가 크게 줄거나 북한 수역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성어부터 치어까지 남김없이 건져올리는 싹쓸이 조업도 명태 어획고 감소에 영향을 줬다.

울릉도 어민들은 90년대까지 오징어 조업을 마치고, 11월부터는 명태 조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명태를 잡는 어선은 없다. 울릉도 저동항 어판장 인근에서 40년 가까이 식당을 하는 감숙자 씨는 “여름엔 오징어회, 겨울엔 명태회가 별미였는데 명태로 만드는 음식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라며 “오징어마저 못 내놓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고 했다.

nyang@heraldcorp.com

※이번 기획보도는 삼성언론재단이 공모한 기획취재 지원사업 선정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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