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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앵그리어른’은 싫어요
  • 2018.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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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은 프렌닥터연세내과 비만클리닉 부원장

후배가 직장 생활의 고민을 토로했다. 자신과 뜻이 맞지 않을 때마다 욱하며 분위기를 뒤엎는 팀장 때문이다. 그때마다 영화 어벤져스의 ‘헐크’가 떠오른단다. 며칠 후 용기를 낸 팀원이 그때 일을 물으면, 뱉은 말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팀원들은 그를 “무덕한 팀장”이라 말하며 상처로 지쳐 가는 중이다.

당신의 주변, 이렇게 버럭 화를 내는 ‘앵그리어른’이 있는가.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지인들로부터 “그분은 아주 화를 잘 내는 분이지”라는 평가를 받지는 않는가. 화를 잘 내는 사람은 화를 참는 것이 오히려 스트레스이고, 앞에서 화를 내는 것이 뒤끝 없는 솔직함이라고 합리화한다. 



하지만 화는 화내는 본인과 타인 모두에게 해롭다. 최근 화났던 상황에서 몸의 반응을 떠올려 보자. 맥박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팔라지며, 눈ㆍ몸ㆍ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근육은 경직되고 소화 기능도 잠시 정지된다. 격분하다가 “잠시 대변보고 올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 화를 낼 때 몸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급격히 나온다. 연구 결과 격분하는 30초~3분간 논리적 판단 주체인 전두엽이 잠시 작동을 멈춰 이성을 잃는다고 한다.

이 습관이 반복될 때 신체 시스템은 교란이 오고 결국 건강에 치명적 피해를 준다. 소위 ‘다혈질’이라 불리던 지인들은 쉰이 넘어 다 아프고 우울하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 글을 쓰는 필자도 분노와 아픔의 젊은 날을 여러 번 경험했다. 화가 날 때에는 지금 이 화를 뱉지 않으면 세상의 정의가 사라질 것 같았다. 화를 내서라도 싸우는 것이 타인의 불편을 방어하는 용감함이라 생각했다. 그 결과 내 몸이 아팠고 세상은 더 멀어졌으며 소중한 몇 명이 떠나갔다.

이에 필자는 삶에 1%도 도움되지 않는 화를 다스리기 위해 공부하고 또 적용하며 화를 조절하는 실천법을 터득했다. 지금은 분노하는 지인들에게 “당신도 화가 안 날 수 있어요”라고 힘줘 조언한다. 필자의 실천법 몇 가지를 알려주련다.

첫째, 화나는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분노를 입술로 막고, 화를 만든 상황과 사람으로부터 얼른 벗어나라. 화날 때 떠오르는 생각은 대부분 ‘나는 더 옳은데 너는 더 틀렸다’로, 튀어나올 말도 관계를 악화할 후회의 말이다. 의식적으로 입을 꾹 다물고 상황을 벗어나면 3분 후 마음이 진정될 수 있다.

둘째, 욱하는 순간 ‘당신의 혈관이 상하기 시작! 치매가 성큼 다가오네요. 지름길을 원하십니까’라는 몸이 보내는 신호를 떠올려라. 당신의 건강과 바꿀 만큼 화내는 것이 중요할까.

셋째, 화나는 순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라. 필자의 주변에는 운전 중 욱하는 바람에 생명을 잃은 지인이 있다. 끼어듦을 참지 못한 보복 운전 때문이었다. 남겨진 가족의 슬픔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내일이면 출장 간 아빠가 다시 돌아올 거라며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사탕을 빨며 웃고 있는 네살배기 딸을 보며 마음이 찢어졌다.

불과 몇달 전 역전패에 분노해 심장마비로 숨진 외국 축구 해설가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화는 사랑하는 가족과 금세 이별하게 만드는 공포의 쓰나미다.

넷째, 화를 내면 몸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하게 분비된다. 그 결과 과식을 유발해 체중이 늘기도 하지만, 억울한 것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과도한 분비 자체가 많이 먹지 않아도 복부 지방을 늘리고 애써 만든 근육을 감소시켜 비만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실제로 섭취량이 적음에도 스트레스가 많아 살찐 사람들을 수없이 봐 왔다. 비만을 보장받고 싶다면 당장 화를 내도 좋다.

다섯째, 욱하는 감정을 입으로 뱉지 말고 글로 적어라. 메모장에 적은 후 1시간 후 꺼내 보면 상처와 자존감으로 상대를 깎아내린 자신을 뒤돌아보며 순간의 ‘욱’을 제어한 일상의 평화가 감사하고 행복할 것이다.

화날 때 화를 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화나는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는 것은 타고난 본성이 아닌 훈련으로 쌓아 온 내공과 품성이다. 이제는 필자도 의식적 훈련을 통해 ‘화내지 않음’보다 유익한 ‘화나지 않음’의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상대의 분노에 되갚지 않음으로 그와 친구가 되고 이웃이 돼 주변이 점차 밝아지고 있다. 이제는 지구의 날씨보다 삶의 날씨에 ‘더 맑아짐’을 당당히 예보하며 세상을 밝게 하는 소중한 씨앗을 조심스레 일궈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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