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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보조기를 소개합니다
  • 2018.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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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저녁. 어두워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괜찮다. 발 디딜 때마다 들리는 낙엽 부서지는 소리가 즐거웠다. 계속 밟았다. 신이 났다. 유독 높은 낙엽 한 더미. 더 힘껏 밟았다.

“철컹”
발이 안 빠진다.

병원. 세 다리로도 걸을 순 있다. 하지만, 이 상태로 계속 살다간 나중엔 무게가 앞으로 쏠려 앞발이 바깥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데. 의사가 추천한 보조기를 맞추기로 했다.

지난 3월 구조된 깜순이 모습.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수소문 끝에 서울 잠실에 한 군데를 찾았다. 8월의 어느 날, 오전 11시에 들렀다. 선반에 다양한 종류의 보조기가 전시돼 있었다.

1. 뜨다
석고부터 뜨자고 했다. 석고 뜨는 분은 “괜찮다” “조금만 참아” “힘들지” 연신 나를 어르고 달랬다.

우선 잘린 다리 윗부분을 비닐로 감았다. 비닐을 안 감으면 나중에 본을 뜨고 떼어낼 때 털이 다 뽑히고 말 것이다. 비닐 위로 석고 바른 붕대를 감았다. 석고 붕대를 감기 전에 가는 철자를 우선 대야 한다. 석고가 굳으면 칼로 잘라서 떼어내는데 맨 살이면 다칠 수도 있으니깐.
발 사이즈도 쟀다. 내 발 치수가 5㎝ 였구나. 옆에서 본을 뜨던 작은 놈은 무서운지 계속 소리를 내지르고 발버둥을 쳤다. 아프니까 더 예민해지나보다.


이철 워크앤런 대표가 깜순이 의족 제작을 위해 석고본을 뜨고 있는 모습.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이철 워크앤런 대표가 깜순이의 발 길이 재는 모습.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2. 받다
일주일 후 집으로 택배가 도착했다.
껴봤다. 순간 어릴 적 걷던 기억이 오롯이 떠올랐다. 자, 본격 내 보조기를 쪼개어 소개해 보겠다.



3. 어렵다
각종 화학소재들과 부품들로 무장한 내 보조기. 다리 짧다고 아무렇게나 만드는 거 아닌가 했는데 다행이다. 사람 보조기와도 비슷한 점이 많다. PP 재질도 같고, 구성품도 비슷했다.
심지어 외국에선 탄소섬유까지 사용한다고 한다. 올림픽용 봅슬레이, 군용 비행기, 고급 스포츠카에나 쓰이는 소재 말이다. 3D 프린터로도 만든다.
첨단산업 같다고? 글쎄, 한계도 있다. 탄소섬유는 인간 보조기에서도 잘 안 쓰일 만큼 비싸다. 쉽게 제작할 듯한 3D 프린터는 오히려 손이 더 많이 간다. 스캔하는 과정이 어렵고, 결과물이 나와도 결국 살이 찌고, 몸집이 커지면서 손으로 정교하게 다시 맞춰 제작해야 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직접 경험해보니 꼼꼼한 공정 과정과 보조기의 정교함은 감동이었다. 개라고 한 번, 버려졌다고 두 번, 다리가 없다고 세 번 받던 대우와는 달랐다. 그래도 두 번은 못 맞추겠다. 넘쳐나는 펫샵과 병원에 비해, 보조기를 맞추는 곳은 거의 없다시피 하니 제작하러 가는 게 어렵다. 내가 들렀던 곳에도 해남, 인천 등 전국 각지에서 온다고 한다.
보조기 비용은 한쪽에 40만원 정도.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마음이 영 편치 않다. 고맙고 미안하고. 



성기윤 기자 skysu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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