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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튜버’ 오창언, “농사에도 문화를 입히고 싶었어요”
  • 201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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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푸드=(인제) 고승희 기자] 손에 흙을 묻힌 것은 초등학교 때가 처음이었다. 아버지의 너른 고추밭은 그의 놀이터이자 학교였다. 그의 꿈이 힘차게 자라는 기름진 땅이었다.

“어릴 때부터 전 농부라고 생각했어요.”

중장비 사업을 하던 아버지는 강원도에서 풋고추 농사를 크게 지었다. 집에는 늘 일이 많았다. 10만주가 넘는 나무에는 매일 5톤 트럭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의 고추가 자랐다. 고사리 손으로 고추박스를 접고, 잡초를 뽑으면 아버지는 아들에게 일당을 줬다. “고추박스 하나에 10원이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일을 배웠어요.”

오창언 씨가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버라이어티 파머’는 현재 1만7000명의 구독자를 모으며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제공=오창언]
먹방(먹는 방송)ㆍ쿡방(요리하는 방송)이 넘쳐나는 시대, 난데없는 1차산업 콘텐츠가 유튜브를 강타했다. ‘청년 농부’ 오창언 씨가 만든 1인 방송 ‘버라이어티 파머’(Veriety Farmer)다. 국내 최초 ‘농방’(농사하는 방송)의 창시자로, 이젠 ‘농튜버’(농사+유튜버)로 불린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또래들에겐 낯설고 신선한 그림이 등장한다. 씨감자 고르기, 초당 옥수수 이삭 솎아주기, 씨앗 파종하기 등 이색 콘텐츠가 많다. 요즘엔 ‘출장’도 다닌다. 비슷한 연령대의 청년 농부를 취재하기 위해서다. 
오창언 씨는 최근 인제 읍내에서 사과 농사를 지을 땅을 구입했다. 이 땅에는 국내에선 흔치 않은 시나노골드 품종이 재배될 예정이다. [사진=리얼푸드]

이 새로운 콘텐츠는 방송 1년 만에 일을 냈다. 구독자는 벌써 1만7000명. 이쯤하면 농업계의 ‘청년 셀럽(celebrity의 줄임말)’이라 할 만하다. “아우, 제가요? 말도 안돼요.” 소년의 얼굴이 남아있는 스물넷 청년 농부에게서 쑥스러운 기색이 가득 찼다. 열심히 손사래를 친다. “농사판에서는 인지도가 아주 조금 있는 정도예요.(웃음)” 찬바람이 여전히 매섭던 날, 강원도 인제에서 오창언 씨를 만났다. 

‘인디언 감자’로 불리는 아피오스 종이 자라는 눈 덮인 밭에서의 오창언. [사진=리얼푸드]

▶ 국내 최초 ‘농방’의 시작…“농업도 대우를 받았으면…”= 어린 시절 아버지는 ‘대농’이었다. 옥수수밭 7만 평에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고추밭. “중장비 사업으로 번 돈으로 농사를 시작하셨어요. 그 때는 농사로 돈을 잘 벌 때였어요.”

수확량도 상당했다. 풍년이 들었고, 하루에 인부 40~50명씩 고용해야 할 만큼 일손이 부족했다. “농사는 잘 됐는데 가격은 폭락하더라고요.” 고춧값은 10㎏당 1만 원으로 떨어졌다. 옥수수 농사는 태풍이 몰고 온 수해로 물에 잠겼다. “몇 년 동안 수억씩 손해를 봤어요.”

오창언 씨가 ‘농방’을 시작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셨기 때문에 힘든 걸 알고 있었어요. 저희 집도 많이 힘들었고요.” 많은 농민들이 악순환을 반복한다. 빚을 내서 농사를 짓고 농사를 지어 빚을 갚는다. “정성껏 농사를 지었는데 가격이 안 좋으면 다음해에 또 빚이 생겨요.” 

농사를 짓는 동안의 ‘기다림’도 무용지물이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수확한 작물은 홀대받기 일쑤다. “농민들은 온 마음을 다해 농사를 지어요.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시는 걸 보고 자라 저도 자부심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우리 농업이 대우를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영상 콘텐츠에 익숙한 젊은 세대답게 오 씨는 방송으로 뛰어들었다. 물론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막연히 농업에 문화를 입히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친한 형의 “미디어 쪽으로 나가보라”는 조언에 힘을 얻었을 뿐.

“유튜브를 하겠다고 컴퓨터를 바꿨어요. 편집과 제작 기술을 유튜브로 배웠고요. 하다 막히면 유튜브 강의를 들으면서 작업했어요. 계속 하다 보니 장비 욕심도 생기더라고요. (하하) 카메라를 세 번이나 바꿨어요.”

지금은 영화 촬영에도 쓰이는 고급 기종으로 각종 콘텐츠를 만든다. “영상 편집을 잘 한다”, “오디오가 깔끔하다”는 전문적이 칭찬도 댓글로 달린다.

직접 농사를 짓는 밭에서 만든 오씨의 콘텐츠는 재기발랄하다. 채널의 인기에 농림축산식품부와 함께 전국의 ‘착한 농가’를 찾아가는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많이 어려워요. 전 아직까지 카메라가 어색해서 말도 제스처도 자연스럽지 않아요. 혼자 하다 보니 정적인 장면만 나오고요. 제가 봐도 재미가 없는데 사람들이 보면 재미있을까 싶어요. 요즘엔 그래서 콘텐츠가 너무 고민이에요.”

오창언 씨는 “지난해 농사를 지은 초당 옥수수 농사는 좋은 반응을 얻어 농사일에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오창언]

▶ 청년 농부의 도전과 모험…“농부는 종의 다양성을 지키는 사람”=누가 정해준 것은 아니었다. ‘농부’가 되겠다고 하면, 도리어 주위에선 만류했다.

“어릴 때부터 직장을 다녀야 한다, 시내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농사밖에 할 줄 아는게 없었고, 흙을 묻히며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좋았어요.”

일부러 농고로 진학해 한국농수산대학 특용작물과를 지원했다. 지난해 2월 졸업한 뒤 ‘청년 농부’로의 삶이 시작됐다. 부모님도 농사를 짓고 있지만, 일찌감치 독립했다. 임대한 4000평 밭에서 초당 옥수수와 주키니 호박, ‘인디언 감자’로 불리는 아피오스 농사를 지었다. 최근엔 대출을 받아 땅을 구입했다. “1500평 정도인데요. 노란색 사과인 시나노골드를 심을 예정이에요. 억 소리나게 빌려서 사놓으니 불안한 마음이 크죠. (웃음)”

마트에선 흔히 볼 수 없는 품종의 작물이 오씨의 손에서 재배된다. “아피오스를 심은 건 영양성분이 특별했기 때문이에요. 인삼에 들어 있는 사포닌이 많아요.” 꽁꽁 얼어붙은 땅 속에서 아피오스는 무사히 뿌리내리고 있다. “아직 수확하진 않았어요. 종자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심은 거예요. 농사로 밥을 먹고 살려면 자리를 잡기까진 최소 3년~5년은 기다려야 해요. 멀리 보고 하는 일이죠.”

잘 알려지지 않은 품종으로 농사를 짓는 일은 모험이다. 특히 시나노골드로 사과 농사를 짓겠다고 하자 주위에선 많이 먹는 ‘홍로’나 ‘부사’의 재배를 권했다. 하지만 오 씨가 새로운 품종에 도전한 것은 농부로서의 안타까움이 컸기 때문이다.

“대형마트나 시장에 가면 사과는 계절 따라 아오리나 홍로, 부사밖에 없고, 감자도 수미감자뿐이잖아요. 종류가 한정적이에요. 식자재의 다양성을 늘려가고 싶었어요. 소비가 있어야 새로운 품종도 나오지만 먼저 시작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더라고요.”

그는 “품종의 다양성을 늘리는 일은 농부가 해야할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농부는 자면서도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잔다고 했어요. 종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선택의 다양성을 늘려가는 것이 농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린천휴게소에서 판매한 오창언 씨의 초당 옥수수 [사진제공=오창언]
인제에서 초당 옥수수 농사를 지은 것도 오씨가 처음이다. 농사를 짓는 과정에선 애를 먹었지만, 판매 중엔 희망을 봤다. 지난해 내린천 휴게소에서 하루 100만원 어치씩 팔았다. 인스타그램엔 ‘백화점에서 파는 것보다 맛있다’는 후기도 올라왔다. 초당 옥수수를 사 간 고객 중엔 여배우 등 유명인들도 있다.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뿌듯해요.” 

청년 농부 오창언 씨는 “농산물에도 스토리를 만들어 가치를 입히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오창언]

초당 옥수수는 운이 좋았지만, 사실 농산물의 판로를 확보하는 일은 쉽지 않다. “판로만 있으면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만큼 정성 들인 농작물을 제 값 받고 파는 일은 어렵다. 지난해 오씨의 주키니 호박의 가격은 한 박스에 1000~2000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제 인건비는 커녕 자재값도 나오지 않는 거죠. 포장 박스 하나가 1000원이거든요.” 공급 양으로 인해 등락폭이 커지는 농산물 거래가격은 ‘눈치싸움’의 연속이다. 

농사일에 한창인 오창언 씨. [사진제공=오창언]

‘청년 농부’의 꿈은 더 멀리 있다. 농산물의 가치를 높이는 일은 새로운 목표다. 농산물 하나 하나에도 스토리를 입혀 브랜드로 만들 계획이다.

“농산물의 가치가 너무 낮아요. 많은 사람들이 5000원 짜리 커피를 마시는 일은 익숙하면서도, 호박 한 개에 1000원이라고 하면 비싸다고 생각해요. (농부들은) 비싸게 팔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제값을 받고 싶은 거예요. 많은 상품엔 광고가 있는데 농산물엔 왜 없을까요. 농산물에도 스토리를 만들어 가치를 입히고 싶어요. 그게 농업을 알릴 수 있는 일 같아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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