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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식주의자는 놀 줄 모른다? 채식버거 가게가 이태원에 간 이유…
  • 2018.02.22.
[리얼푸드=고승희 기자] 채식 인구는 나날이 늘고 있지만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채식 위주의 식당도 흔치 않을 뿐더러 대부분 요리가 육류와 생선이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동물권단체 케어(care)의 박소연 대표는 여덟 살 때부터 채식을 시작했다. 비건(Veganㆍ완전 채식주의자)이 된 건 10여년 전. 박 대표 역시 “한국에선 비건으로 사는 건 조금 힘들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소연 대표는 “채식주의자는 심심하다는 선입견을 깨기 위해 허거스는 일부러 이태원에서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그는 “많은 나라로 출장을 다니면서 가장 부러웠던 점은 채식 식당이 많다”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지난 2002년 영국에 갔을 당시 채식 버거 가게에 들렀다가 ‘신세계’를 경험했다. 이후 싱가포르에서 만난 채식 버거도 박 대표에겐 ‘인생 버거’였다고 떠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햄버거를 먹는 이유는 싸고, 맛있고, 빨리 먹을 수 있기 때문이잖아요. 이렇게 맛있는 채식 버거를 만들 수 있으면 사람들이 안 먹을 이유가 없겠구나 싶었어요. 한국에서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하게 됐어요.”

그 염원은 2016년 서울 이태원에서 실현됐다. 제일기획 뒷골목 주택가를 걸어 올라가면 작고 예쁜 가게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다. 초행자는 길을 헤맬 수도 있을 만큼 눈에 띄지 않는 곳이다. 여기가 바로 채식 버거를 팔고 있는 ‘허거스’(HUGGERS)다. ‘월세’가 싼 지역을 찾아다니다가 박소연 대표를 비롯한 케어 회원 3명이 조금식 돈을 모아 가게를 냈다고 한다. ‘허거스’는 ‘허그해주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박 대표와 허거스 가족들이 함께 지은 이름이다. 
동물권단체 케어에서 운영 중인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채식 버거 가게 허거스 [사진=리얼푸드]


“사실 채식주의자는 ‘재미없다’는 선입견이 있어요. 채식 식당을 하는 분들은 모두 신념은 확고한데 트렌드는 잘 모르고, 건강과 생명권 차원에서 접근하다 보니 젊은 친구들이 잘 가지 않는 곳도 많더라고요. 요즘엔 재밌는 식당들도 많이 생기고 있지만, 그동안엔 한식 위주의 식당이 많았고요. 그래서 일반인들이 와서 즐길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았어요. 허거스가 이태원에 자리를 잡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어요.”

좀 더 젊은 세대를 공략하고자 했다. “채식주의자는 건전하게 채식만 고집하다 보니 재미없고 ‘심심하다’, ‘놀 줄 모른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어요. (웃음) 거창하고 좋은 인테리어를 가진 식당은 아니지만 저희 나름대로 아기자기하게 꾸며놨어요.”

얼핏 보기에는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는 이 곳은 채식 버거부터 비건 쿠키에 이르기까지 모든 메뉴가 식물성으로 구성돼있다. 박 대표와 그의 남편, 비건인 직원들이 숱한 시행착오 끝에 버거 패티 레시피를 개발했다.

“고기와 같은 맛과 식감을 내는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현미, 버섯, 견과류와 병아리콩 등 다양한 식재료로 패티를 만들어요. 고기를 대체할 수 있는 맛과 식감을 찾다 보니 재료비가 많이 들어가지만, 계속 만들다 보니 이 정도면 팔 수 있겠다 싶었어요.”

초창기 버거 하나였던 메뉴는 진화를 거듭했다. 버거 종류만 해도 10여개. 두부, 아보카도, 콩불고기에 허거스에서 직접 만든 수제 소스로 다양한 메뉴를 완성했다. “일반인들이 더 좋아할 만한 맛으로 개발해 나갔어요.” 허거스에서 파는 비건 쿠기도 인기다. 우유나 달걀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아울러 100% NON-GMO(비유전자조작식품)다. “두유의 경우에도 동물성인 비타민D3가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저희는 해당 성분이 없는 두유를 쓰고 있어요. 주원료는 밀가루이고, 식물성 크림과 비정제 설탕을 넣고요.”


허거스의 인기 메뉴인 바질 페스토 아보카도 버거 [사진=리얼푸드]

허거스를 찾는 손님의 대부분은 20~30대 젊은 여성들이다. 외국인 손님도 적지 않다. 처음 문을 열던 날은 의외의 광경도 펼쳐졌다. 홍보를 많이 했던 것도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찾아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그만큼 채식 버거에 대한 요구가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주말 3일(금, 토, 일) 동안에만 문을 열지만, 입소문이 나서 꾸준히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수익이 많이 나진 않지만, 허거스에선 수익의 10%를 동물권에 기부하고 있다. 허거스가 존재하는 이유 역시 동물들을 도와주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지금 채식 열풍은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건강은 물론 환경보호,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통해 ’채식‘이 확산되며, 하나의 현상으로까지 자리 잡고 있다. 이른바 ‘비거니즘’은 올 한 해를 대표하는 ‘푸드 트렌드’로까지 꼽히고 있다.

“채식은 우리의 모든 것과 연결돼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이 더 맛있는 것을 먹고, 더 좋은 것을 가지려는 마음으로 인해 어떤 것들은 멸종되고, 희생되고, 고통을 받게 되죠. 그건 동물의 고통, 환경 피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인간에게도 돌아와요. 주 1회 채식 캠페인이 일고 있지만, 주 1회 채식이 아니라 주 1회만 육식을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강요하지는 않아요. 다만 그래야 지금의 환경 문제, 건강 문제, 동물에 대한 고통이 조금은 해소되지 않을까 싶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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