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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품업체 사고나면 절반은 망해”-‘식품 분야 전문 1호’ 김태민 변호사
  • 2018.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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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 관리가 최우선

- 법률가로는 국내 유일… ‘식품계 토익’ 인증시험 운영도

- ‘공업용 우지’파동 8년만에 무죄에도 삼양, 라면시장 추락



“식품산업은 사고가 난 다음에 소송에서 이기거나, 형사 재판에서 무죄를 받아도 회복이 어렵습니다. 중소기업은 뉴스에 나오면 반 이상은 망한다고 봐야 해요.”

국내 ‘1호’ 식품 분야 전문인 김태민(45·변호사시험 1회) 변호사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사전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식품산업은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에요. 영업이나 납품능력을 기반으로 회사를 세운 분들이 리스크 관리를 하지 않은 채 규모를 키우다 보면 한 번은 ‘시스템 부재’로 인한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 한 번에 회사가 존폐위기에 놓여요. 한 달에 50만~100만 원이면 법률자문을 받을 수 있는데, 대기업조차도 굳이 이런 비용을 들여야 하는지 고민을 해요. 공무원하고 밥을 먹거나 골프 치는데는 훨씬 돈을 많이 쓰면서도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과거 라면업계 ‘공업용 우지파동’부터 ‘대장균 시리얼’, ‘포르말린 통조림’ 사건까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식품 관련 사건 중에는 결국 인체에 무해한 것으로 판명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세상은 ‘결론’에는 관심을 주지 않는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극히 민감하게 반응하던 소비자들의 취향도 되돌리기 어렵다.

김 변호사는 라면업계 시장 점유율을 바꿔놓았던 ‘우지파동’도 사전에 법률자문을 받았다면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1989년 삼양이 ‘미국산 공업용 소기름’으로 라면을 튀긴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사건이다. 미국에서는 고기를 제외한 소뼈나 내장을 먹지 않기 때문에, 이 부위에서 추출한 기름도 ‘공업용’으로 분류됐다. 오히려 당시 다른 업체에서 사용하던 ‘팜유’보다 양질의 것이었지만, 의혹만으로도 업체가 받은 타격은 심각했다.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이 나는 데도 8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미 합법이라는 확인을 받고 사업을 하면 행정처분이나 검찰 수사를 받을 이유가 없어요. 가령 우리나라에서는 대구를 머리까지 탕을 끓여서 먹잖아요. 하지만 호주같은 나라에선 이 부위를 먹지 않고 폐기를 하기도 해요. 우리나라에선 사람들이 돈주고 사먹지만, 외국에선 버리는 경우도 있는 거죠. 그렇다고 대구 머리를 들여오는 게 ‘폐기물’ 수입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지금도 자문업무 중 상당 부분이 공정이나 새로운 제품 수입이 법에 위반되는지 질의하는 내용입니다. 돌다리를 두드리는 거죠.”

김 변호사는 국내 유일의 식품 전문 변호사다. 하지만 처음부터 법률가가 되려던 건 아니었다. 1992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수학능력시험을 다시 치르기도 했다. 이후 식품과 무관한 일을 하던 그는 모교 교수님의 권유로 2006년에서야 졸업장을 받았고, 이듬해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일했다. “공무원 생활을 해보니 사기업과는 분위기가 달랐어요. 의외였던 건, 공무원들이 행정법이나 관련 법령보다 관행에 의존해 일을 처리하는 점이었어요. 시장이 크지 않지만 그래도 이 분야 전문성을 갖춘 변호사가 몇 명은 있을 줄 알았는데, 아예 전무했어요.”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와 변호사 자격을 갖춘 뒤 그는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식품 분야 전문가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소송대리는 물론 자문업무와 관계 공무원 교육까지 도맡고 있다. 최근에는 ‘식품법무실무능력시험’을 직접 운영 중이다. 영어 분야 토익이나 토플처럼, 식품 관련 법률 지식을 테스트하고 ‘지식인증’을 해주는 교육사업이다. 지난해 8월과 12월 두 차례 시험이 치러졌고, 110명이 인증을 받았다. 60~70%가 기업체 식품 실무자들이었고, 나머지는 취업준비생이었다. “식품법령에 관해서는 마땅한 학회도 따로 없습니다. 시장이 작으니 큰 관심이 없죠. 식약처 공무원들도 채용 단계에서 관련 법령 시험을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국민이 매일 먹는 음식을 다루는 중요한 일입니다.”

김 변호사는 서른 한 살에 대학 졸업장을 받았다. 하지만 젊은 시절 사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일했던 경험은 지금의 밑천이 됐다. 어떻게 보면 로스쿨 도입 취지에 가장 걸맞는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빛을 보는 건 운동선수나 연예인 말고는 거의 없지 않을까요. 20~30대에 잘 안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투자한 결과는 40에 돌아오고, 50~60대에는 명예가 돌아온다고 생각해요. 다른 분들도 너무 일찍 ‘실패했다’고 절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변호사시험 1회 △사단법인 식품안전협회 이사 △식품의약품안전청 연구개발사업 평가위원



좌영길 기자/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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