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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제가 먹던 회양요리…그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는다”…치쯔하이 셰프
  • 2017.12.19.
[리얼푸드=고승희 기자] 셰프의 손이 섬세하다. 듬성듬성 썰어넣은 채소, 큼직한 고기, 센 불에 금세 익힌 요리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중국 4대 진미 중 하나인 회양(淮揚)요리는 ‘손이 많이 가는 요리’다. 식재료 손질에 걸리는 시간은 “길게는 이틀”(치쯔하이 셰프)이나 된다. 
치쯔하이(Qi Zhi Hai) 마스터 셰프는 “회양요리는 원재료의 맛을 100% 살리는 요리”로 “그 어떤 조미료도 넣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귀한 물건을 다루듯 셰프의 손길은 신중하다. 질 좋은 삼겹살은 기계를 쓰지 않고 일일이 손으로 다진다. 결을 따라 이동하는 손이 ‘음식의 맛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손으로 반죽하듯이 고기를 100번 정도 쳐요.” 그래야 삼겹살의 비계가 물처럼 질어진다. “그런 다음 약한 불에 5시간 정도 쪄내요.” 서서히 익힌 고기는 두부처럼 부드러워진다. 이 요리는 수(隋) 양제(煬帝)가 즐겨 먹던 ‘라이언 헤드’(Lion Head)다. 다진 돼지고기로 만든 미트볼 요리로, ‘사자 머리’처럼 생겼다. ‘라이언 헤드’는 회양요리의 대표 메뉴 가운데 하나다. 중국에선 지금도 “국빈이 오면 ‘라이언 헤드’를 내놓는다”고 한다.

회양요리는 한국에선 생소하다. 화끈한 불맛, 달달하고 자극적인 맛, 뜨거운 기름에 튀기고 볶은 ‘중국요리’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모든 중국요리의 기초가 회양요리예요.”

유구한 역사와 문화가 쌓인 이 요리는 셰프에게도 ‘자부심’이다. 40대 중반에 ‘대가’(大家)라는 수사가 붙었다. 회양요리의 정통파로 분류되는 매가파(梅家菜) 요리의 3세대(Third Generation) 전수자인 치쯔하이(Qi Zhi Haiㆍ45) 싱가폴 그랜드 콥손 워터프론트 호텔 마스터 셰프가 한국을 찾았다. 밀레니엄 서울 힐튼 중식당 ‘타이판’에서 회양요리를 선보이기 위해서다. 최근 치쯔하이 셰프를 만나 인터뷰했다. 

첨가물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오로지 게살로만 맛과 향을 낸” 게살스프

▶ 주인공은 식재료…“그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는다”=장구한 역사다. 치쯔하이 셰프는 ‘홍루몽’의 이야기부터 꺼냈다. ‘홍루몽’은 ‘만리장성과도 바꿀 수 없다’는 소설로, ‘중국인의 자존심’으로 불린다.

“‘홍루몽’에는 양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등장인물 중 관후가라는 사람이 ‘가복가연’에서 대접한 요리가 바로 회양요리였어요.” 그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고전요리’라는 뜻이다. “춘추시대부터 명청시대에 이르기까지 동남 제일의 요리이자, 천하 진미로 불리고 있어요.”

지리적으로 강소성의 회안부터 양주에 이르는 지역의 요리다. 상해와 양주 사이를 장강이 흘러 주요 도시들이 발달했고, 황제들의 방문이 잦았다. 찬란한 요리문화 덕에 회양요리는 궁중요리로 입성했다. 치쯔하이 셰프 역시 회양요리의 본토인 강소성의 양주 출신이다.

“회양요리는 원재료의 맛을 100% 살리는 것이 기본이에요. 다른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죠. 생선이면 생선, 닭이면 닭, 고기면 고기. 원재료의 맛과 향만 내려고 하죠.”

그래서인지 치쯔하이 셰프의 요리에는 ‘자극’이 없다. ‘전통요리’라는 회양요리는 바로 지금 전 세계 푸드업계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건강식’의 기본이 이 요리에 있다. “조미료나 색소를 절대로 넣지 않는 것이 원칙이에요.”

가급적 소금 한 꼬집도 아끼는 이 요리를 만들기 위해선 재료 손질 과정이 중요하다. 보통의 요리보다 더 섬세한 셰프의 손길을 요구한다. “칼질도 거침없이 하지 않아요. 더 정교하고 정밀해야 하죠.” 

수 양제가 사랑했던 ‘라이언 헤드’는 회양요리를 대표하는 메뉴 가운데 하나로, 지금도 중국에선 “국빈이 오면 대접하는 요리”로 꼽힌다.

‘대주간슬’이라는 두부 요리는 예술작품에 가깝다. “두부를 실처럼 얇게 잘라 만들어요.“ 가느다랗게 손질된 두부는 육수와 곁들여져 꽃처럼 피어난다. “이렇게 썰어야 두부의 잔내를 날릴 수 있고, 원재료의 맛을 살릴 수 있어요.”

고기 하나를 다듬을 때도 손바닥에 올려놓고 채를 썬다. 써는 방향과 강도에 따라 맛과 식감이 달라지니 보다 정교한 작업을 하기 위한 방식이다. ‘탈골대어두’를 만들 땐 생선의 두 개골을 정교하게 작업해 가시 하나 남기지 않는다. “황제가 먹던 음식이기 때문에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리면 큰 일 나잖아요. 그래서 일일이 수작업을 하는 거죠.”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이 요리의 주인공은 식재료와 셰프의 손이다. 식재료를 만지는 정교한 손기술이 중요한 요리여서, 경지에 오른 셰프들은 ‘칼신’으로 불린다. 셰프에게 노하우를 물었다. “그것만큼은 절대로 말해줄 수 없어요. (웃음)”

흰살생선 우럭과 잣, 당근 등이 어우러진 생선요리로 담백한 맛과 향이 지중해 요리를 연상케 한다.

▶ “미각 살리려 술, 담배 안 한다”=그토록 식재료가 중요한 요리라는데, 치쯔하이 셰프는 ‘빈 손’으로 한국을 찾았다. 2주간 셰프의 요리를 선보일 중식당 타이판 측에서는 내심 치쯔하이 셰프의 특별한 식재료 공수도 기대했다. 하지만 셰프는 단호했다.

“현지에서 쓰는 식재료가 없는 경우도 있죠. 양주에선 당연히 로컬푸드로만 요리를 하니까요. 하지만 원하는 재료가 없다고 요리를 못 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 나라의 재료로 전통의 음식에 가장 가깝게 만들 수 있어요. 제 칼솜씨로 충분히 맛을 살려낼 수 있고요.”

‘다진 생선과 야채볶음’ 요리는 본래 귀화어를 쓰지만 한국에선 흰살 생선인 우럭으로 완성됐다. 담백한 생선살과 고소한 잣, 싱그러운 색감의 당근이 어우러지니 ‘지중해 요리’와 닮았다. 러시아에서 게살 스프를 만들 땐 킹크랩을 활용했고, 이탈리아에선 그 나라의 재료로 회양요리의 맛을 냈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모든 요리가 원재료의 맛을 살린다면 우리(회양) 음식과 같은 맛이 나올 수 있어요.”

정교하게 손질된 식재료는 섬세한 불 조절로 풍성한 식감과 맛을 지닌 진귀한 요리로 완성된다. 그 어떤 조미료도 넣지 않는 ‘자연의 맛’을 내기 위한 셰프의 자기 관리는 철저하다.

“미각을 살리기 위해 술, 담배를 하지 않아요. 더 맛있는 요리를 즐기기 위해서죠. 사천음식이나 마라와 같은 매운 음식도 먹지 않고요. 이런 음식을 먹은 후엔 요리의 간을 맞추는 것이 힘들거든요.”

평소 식습관도 신중하다. 어쩌다 간이 센 음식은 ‘쉬는 날’에만 먹는다. 어쩔수 없이 먹게 된 날에는 “입을 깨끗이 헹궈내기를” 반복한다. 이 모든 과정이 요리로 향하는 길이다. 정성을 담아내는 회양요리처럼 셰프의 삶에도 정성이 담긴다.

“요리 철학이요? 다른 건 없어요. ‘용심’(用心)이 중요해요. 열심히, 정성을 다하는 거죠. 성심껏 마음을 써야 좋은 요리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shee@heraldcorp.com

[사진=밀레니엄 힐튼 호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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