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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식의 수도, 페루의 맛⑥]“한 접시 안에 생태계를 담는다”…비르힐리오 마르티네스 센트럴 오너 셰프
  • 2017.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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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푸드=리마(페루) 고승희 기자] ‘꽃’처럼 아름다운 도시 미라플로레스(Miraflores)의 고급 주택가 사이. 하나 둘 모인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우두커니 솟은 나무가 간판도 없는 건물을 가리니 한낮에 모여든 사람들과 평범한 건물의 정체가 더 수상쩍다. 으리으리한 ‘자기 과시’는 없다. 세심한 보행자가 아니라면 밟고 지나치기 좋을 위치에 ‘센트럴’(CENTRAL)이라고 적힌 간판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센트럴 레스토랑 오픈 20분 전 손님들이 몰려와 줄을 서고 있다.
오픈 20분 전,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은 기대감으로 들떠 있다. 그럴 법도 하다. 일 년에 세 번, 4개월치 예약을 받는데 하루 이틀이면 만석이다. “부모님도 초대를 못 한다”(비르힐리오 마르티네스 셰프)고 한다.

레스토랑 오픈을 두 시간 앞둔 오전 11시, 한 겨울로 접어든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센트럴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인 비르힐리오 마르티네스(Virgilio Martínezㆍ40) 셰프를 만났다. 

비르힐리오 마르티네스 셰프는 센트럴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셰프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센트럴은 대체 뭐가 그렇게 특별한 거냐”고 묻자, 페루의 ‘스타 셰프’는 눈을 빛내며 미소를 지었다. 미사여구는 없었다. “한 번 경험해보세요.” 이 한 마디가 전부였다.

오후 1시, 센트럴의 작은 문이 열리면 진작부터 기다리던 직원들이 화사한 겨울 햇살 아래의 테이블로 손님들을 안내한다. 걸음마다 여유가 넘친다. 물잔을 향하는 주전자의 물 줄기는 레스토랑을 가득 메운 라운지 음악처럼 부드럽게 흐른다.

센트럴의 메뉴는 두 가지. 17가지 코스와 11가지 코스뿐이다. 셰프의 ‘천재성’은 이 메뉴의 구성에서 나온다. 해발 3700m의 안데스 고원부터 아마존 정글, 태평양 해수면으로 향하는 고도(高度)별 ‘맛 지도’가 ‘센트럴’의 접시에 담긴다. 음식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최고의 경지’가 있다면 바로 ‘이 곳’이라는 미식가들의 이야기는 허언이 아니었다. 센트럴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에 없던 ‘미식의 세계’를 만나게 하는 곳이다. “경험해보면 안다”는 스타 셰프의 자신감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센트럴은 지금 페루 ‘미식 혁명’의 중심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레스토랑으로 떠올랐다. 센트럴 고객의 80%는 외국인. 페루 사람들은 이 곳을 ‘꿈의 레스토랑’이라고 부른다. 스타 셰프와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세계 여러 나라와의 컬래버레이션 미식회와 식재료를 구하기 위한 출장이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모라이 지역에 새로운 레스토랑 ‘밀’(Mil)의 오픈을 앞두고 분주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지난 4월 말 연락을 시도해 두 달 반의 기다림 끝에 셰프를 만날 수 있었다. 그가 한국 언론과 단독 인터뷰를 갖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옥상 정원에서 기르고 있는 향신료와 꽃들
▶ 180종의 희귀 식재료 개발, 물ㆍ설탕까지 정제=평균 수면시간은 4시간, 비르힐리오 셰프는 ‘노력하는 천재’(센트럴 레스토랑 정상 셰프)로 통한다.

“오전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여기에 있어요. 집도 바로 옆이에요. (웃음) 이 곳 센트럴에 제 인생이 있죠.”

센트럴을 찾은 오전 11시는 “신메뉴 개발을 위한 연구 시간”이다. 분주한 가운데 등장한 스타 셰프는 조명이 낮은 바(Bar)에서도 유난스럽게 눈빛이 반짝였다. 
센트럴 레스토랑의 ‘푸드 연구소’인 마테르 이니시아티바(Mater Iniciativa)
셰프의 인생과 더불어 센트럴에는 ‘페루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겼다. “안데스에서 공수한 돌”이 자연 친화적인 인테리어를 완성하며 손님들을 맞는다.

비르힐리오 셰프를 따라 계단을 오르니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린다. 센트럴의 2층엔 메뉴의 식재료를 모아 전시한 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셰프의 연구 공간도 이 곳에 자리했다. 직원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사무실, 페루의 모든 식재료를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연구실(마테르 이니시아티바, Mater Iniciativa)이 있다. 이 곳에서 페루 사람조차 알지 못 하는 180종이 넘는 희귀 식재료가 개발되고, 생물 다양성에 대한 정보가 다시 정리됐다. 500개가 넘는 셰프의 요리도 등장했고, 센트럴을 대표하는 코스 메뉴 ‘마테르 엘리베이션’(Mater Elevations)이 해마다 진화했다. 

센트럴 레스토랑의 ‘푸드 연구소’인 마테르 이니시아티바(Mater Iniciativa)
이 곳은 이미 레스토랑의 차원을 넘어셨다. 센트럴에선 모든 일이 이뤄진다. 물을 정수하고, 향신료를 재배하고, 설탕을 정제한다. “물은 모든 음식의 첫 번째예요. 물이 좋아야 좋은 음식이 나오죠.” 안데스의 빙하를 정제한 ‘신선한 물’은 센트럴에서 만드는 “모든 음식의 ‘기본’이자 ‘차별화’의 시작”이다. 믿기 힘든 광경들이 지구 반대편의 레스토랑에서 펼쳐진다.

“음식으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나만의 장소가 있다면 0부터 100까지 한 곳에서 완벽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식재료가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어떤 효과를 내는지를 연구해서 완벽한 음식을 제공하고 싶은 거죠.”

센트럴 곳곳에 ‘셰프의 철학’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센트럴의 코스 메뉴에 도입한 ‘고도’ 개념은 기막힌 발상이었다. 

센트럴의 코스메뉴
“지금의 사람들은 평면으로 살고 있어요. 약국에 간다고 생각해봐요. 직선 도로에서 좌회전, 우회전으로 길을 찾죠. 상하의 개념이 없어요. 음식으로 높이(상하) 개념을 찾아주고 싶었어요.”

이 독창적인 발상은 비르힐리오 셰프의 요리 인생에 있어 ‘전환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2009년 레스토랑을 오픈하고, 2010년 무렵부터 페루 전역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잉카의 옛 수도’ 쿠스코 여행 중 만난 안데스 주민들은 그에게 발상 전환의 영감을 줬다. “안데스 사람들은 수평이 아닌 수직 개념의 환경에서 살고 있어요.” 그 발견은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2012년 고도 테마의 코스 메뉴가 도입됐다. 2년 후 센트럴은 남미 최고의 레스토랑(월드베스트레스토랑50 2014)으로, 다음해 전 세계 4위(월드베스트레스토랑50 2015) 레스토랑으로 꼽혔다. 미슐랭 스타도 가져갔다.




센트럴의 코스메뉴
▶ “한 접시 안에 담긴 페루의 생태계…음식으로 떠나는 여행”=비르힐리오 셰프는 난데없이 휴지를 한 장 뽑더니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구긴 뒤 테이블 위에 놓았다.

“페루의 지면은 구겨진 휴지와 같아요. 안데스, 사막, 정글로 이어지고 그 안에 높은 지대가 있고, 낮은 지대가 있어요. 지대마다 기후의 다양성을 보이죠.”실제로 전 세계에 존재하는 150개 지역의 날씨 중 페루엔 120개 지역의 날씨가 존재한다. “서로 다른 기후와 높이마다 자라는 작물들이 달라져요. 아스파라거스, 감자, 카카오, 커피, 올리브가 그렇죠. 태평양과 아마존의 생선도 있고요.”

축복받은 페루의 환경은 지금의 센트럴을 있게 했다. 센트럴에선 페루의 “18개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를 한 접시 안에” 담고 있다. “음식을 통해 다른 지역을 여행하고, 페루의 다양한 생태계를 담아내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를 주는 거죠.”

비르힐리오 마르티네스(가운데) 셰프와 4명의 메인 셰프로, 정상(오른쪽에서 두 번째) 셰프는 센트럴 최초의 한국인 수셰프다.

페루의 생태계를 한 접시 안에 담을 때에는 ‘셰프만의 법칙’이 있다. 

“한 접시 안에는 한 구역만 담아요. 예를 들면 생선과 커피를 한 접시에 담지 않죠. 한 지역에서 자라지 않으니까요. 생선이 메인이라면 미역, 조개가 어우러지고, 해변의 모래가 장식될 거예요. 함께 자라는 작물이라야 한 접시 안에 담길 수 있어요. 그래야 그 안에서 조화가 나오니까요.”

비르힐리오 셰프가 접시마다 구현하는 세계는 곧 페루 자체다. 아무리 진기하고 값진 식재료일지라도, 셰프로서 욕심나는 재료가 있을 지라도 페루에서 생산되지 않는다면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철저한 “현지화”로 메뉴를 구성하는 것이 ‘철칙’이다. 거기에 반드시 “제철 식재료로 사용”하되, “뿌리부터 잎까지 버리는 것 없이” 쓴다는 요리사로의 ‘철학’도 담겨있다.

해발 2800m인 ‘하이 정글’(High Jungle) 요리에선 ‘밀림의 눈썹’으로 불리는 장식용 돌과 카카오계 열매인 마캄보(Mcambo)로 만든 빵, 에어 포테이토(Air potato)가 곁들여진다. 해발 400m 요리인 ‘아마존의 색감’(Amazonia Colors)에선 아마존에서 잡히는 민물고기 빠이체(Paiche)와 이 지역에서 자라는 야콘과 레몬그라스를 더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페루의 생태계가 입 안에서 생동한다. 비르힐리오 셰프의 독착정인 발상과 창의력은 페루 요리를 한 단계 끌어올리며 전 세계 미식가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센트럴 물 정제실


“요리사의 길을 걸으면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자 했어요. 해발 4000m의 생태계를 리마로 가져와 어떻게 요리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어요.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가는지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만 해요. 그게 당연한 의무이고, 요리하는 사람으로서의 원동력이 되고 있어요.”

비르힐리오 셰프의 주무대는 ’키친‘(부엌)이지만 그가 ‘영감’을 얻는 곳은 “키친 밖인 세상”의 한복판이다. “우리는 뭘 가졌는지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아요. 그건 새로운 곳을 찾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죠. 도시에선 안데스나 아마존과 같은 청정지역의 생태계를 볼 수가 없어요. 전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농민들을 이어주는 중개자예요. 농민들에겐 작물의 가치와 의미를 해석해주고, 도시엔 쉽게 갈 수 없는 지역의 생태계를 나만의 감성과 창의력으로 재해석해 음식으로 보여줘요. 그들 사이의 다리를 놓는 통역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거예요.”

‘아티스트’적인 발상으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셰프’로 꼽히면서도 페루의 정체성을 담는 그에게 셰프로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연’이다.

“페루의 미래는 안데스와 아마존에 있어요. 가장 더럽혀지지 않은 땅이고, 가장 자연과 가까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죠. 요리사는 그들을 통해 더 많이 배워야 해요. 생태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식재료를 얻고, 좋은 음식을 만들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예요. 맛만 좋은 요리가 아니라 그 안에서 문화와 스토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계속 해야죠.”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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