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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의 역습, 식탁의 배신]④케냐(옥수수)-무릎 높이에도 못자란 옥수수…마트서 사라진 ‘케냐의 주식’
  • 2017.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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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인들의 주식 ‘옥수수’, 기후변화로 생산 타격
-줄어드는 강수량…작물 갉아먹는 해충도 ‘골칫거리’
-옥수수 가루 구하기 어려워…이웃나라서 긴급 수입


[리얼푸드=나이로비ㆍ무구가(케냐) 박준규 기자] 지난 6월 29일 아침 8시. 케냐 북서쪽 국경부터 수도 나이로비까지를 잇는 A104 간선도로 상행선은 지독히도 막혔다. 통근 차량이 몰리면서 빚어지는 이 풍경은 케냐 사람들에게도 일상이다. 뻥 뚫린 반대 차선을 달려 나이로비를 벗어났다. 크고 작은 빌딩, 출근하는 사람으로 북적대는 도시의 풍경은 차가 달리기 시작한 지 10분만에 눈 앞에서 사라졌다.

자동차가 나이로비 경계를 넘어서 키암부(Kiambu) 카운티로 접어들었다. 우리로 치면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로 진입한 셈이다. 1938년 문을 열었다는 ‘시고나골프클럽’(Sigona Golf club)을 지나자 사방엔 완연한 농촌 풍경이 펼쳐졌다. 지천이 옥수수밭이었다.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와 있음이 실감났다.

무구가(Muguga)에 닿았다. 이곳에 있는 케냐 농업연구청(KARI) 주변도 온통 옥수수밭이었다. “멀리서 보면 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가가면 키가 제각각이에요” 운전사 사무엘이 일러줬다. 옥수수밭이 시야에 가까워지자 그의 말은 분명해졌다. 어떤 옥수수 나무는 2m에 가까울 정도로 키가 컸지만, 사람 허리 높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보였다.

나이로비 중심에서 북서쪽으로 25㎞ 가량 떨어진 무구가(Muguga) 일대의 옥수수밭. 키가 훌쩍 커야할 옥수수가 1m도 채 자리지 못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사진=박준규 기자]
이 일대 10에이커(약 4만㎡) 넓이의 땅에 농사를 짓는 아모스 키토토(Amos Kitoto) 씨는 “우기에도 가물어서 옥수수 농사를 망친 곳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키토토 씨는 소작농이다. 땅을 맡아서 농사를 짓고 소출의 일부를 주인에게 보낸다. 그는 “작년 작황이 특히 나빠서 40㎏짜리 포대 5개만 겨우 수확했다. 주인과 고향집에 보내고 나니 남는 게 없더라”고 푸념했다.

▶하늘만 쳐다보는 농사 = 케냐는 1년간 우기가 두 차례 찾아온다. 대우기(3~5월)와 소우기(10~12월)다. 농부들은 통상 3~4월에 씨를 뿌려서 5개월 정도 키운 뒤 거둬들인다. 파종 이후에 비가 충분히 내리느냐가 풍작과 흉작을 가르는 관건이다.


농부 아모스 키토토 씨가 자신의 옥수수밭을 배경으로 서 있다. 그나마 잘 자란 옥수수를 골랐다.

하지만 아프리카를 덮친 기후변화는 평화로웠던 ‘우기-건기 사이클’을 깨버렸다. 우기와 건기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 우기가 시작하는 시점이 평년보다 1개월 이상 늦어지거나, 우기더라도 비 내리는 날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렇게 되니 농부들은 파종시기를 결정하기 어려워지고 옥수수들도 균일하게 크지 못한다는 게 현지에서 만난 농부와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키토토 씨의 동네에는 이미 농사를 망친 땅들이 많았다. 옥수수 나무가 무릎 높이에도 오지 못한 밭들도 있다. “이런 밭들은 아예 갈아엎어서 다른 작물을 키우거나 그냥 방치하기도 한다”고 키토토 씨가 얘기했다.

곳곳엔 아예 밭을 갈아엎은 땅도 보인다.

기자와 동행한 농촌진흥청 산하 케냐 코피아(KOPIA)센터 김충회 소장은 이 나라 농업을 ‘하늘만 쳐다보는 농사’라고 표현했다. 기술이나 인프라가 너무 낙후했다는 얘기다. 김 소장은 “케냐의 관개농지 면적이 전체의 0.03%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기에 맞춰서 파종시기를 결정하는 게 아주 중요한데, 기후변화로 그게 어렵게 되고 있다”고 말했다.

▶벌레의 습격 = 옥수수를 키우는 농민들은 때아닌 ‘벌레’와도 싸워야 했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비가 덜 내리고, 대지가 마르는 데서 그치질 않고 해충까지 활개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줄기에 숨어서 옥수수에 해를 입히는 밤나방(Fall Army Worm) 애벌레가 그 주범.

밤나방은 지난해 아프리카 서부 나이지리아에서 발견됐다. 이후 빠르게 동쪽으로 퍼졌다. 올해 초부터는 케냐에서도 밤나방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케냐 농축산부는 올 4월 밤나방이 창궐했음을 공식 발표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벌레가 번지는 속도는 빨랐다. 케냐의 곡창지대인 ‘리프트벨리’(Rift Valley) 지역을 지나 동부 해안까지 진격했다.
케냐 우아신 기슈(Uasin Gishu) 카운티의 한 농민이 바짝 마른 자신의 옥수수 농장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Daily Nation]

이 해충은, 작물은 물론이고 ‘농부들의 마음’까지 갉아먹었다. 나이로비의 한 재래시장에서 만난 상인 수잔(Susan)은 “옥수수는 물론이거니와 콩, 밀, 쌀, 채소들도 다 피해를 입어서 시장에 물량을 공급하지 못하는 농부들이 열에 서넛쯤 된다”고 했다.

영국에 있는 국제농업생명공학연구소(CABI)는 지난 5월 “밤나방 애벌레가 창궐하면서 앞으로 1년간 아프리카 국가들이 옥수수 농사에서 30억달러(약 3조3800억원) 정도의 손실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치솟는 가격, 지독한 굶주림 = 케냐 사람들은 옥수수 가루를 ‘웅가’(Unga)라 부른다. 웅가로 주식인 우갈리(Ugali)를 만든다. 옥수수 농사의 어려움은 곧 먹고사는 문제로 이어진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은(OCHA) 케냐에서 340만명 가량이 식량 위기에 놓인 것으로 추산한다. 이 가운데 260만명은 심각한 식량 부족을 마주하고 있다. 

[그래픽=최현주]

특히 상황이 나쁜 건 에디오피아와 맞닿은 케냐 북부 지역<그래픽 참조>이다. 투카나(Tukana), 마사빗(Marsabit), 만데라(Mandera), 와지르(Wajir) 등이 대표적이다. 지포라 오티에노(Zipora Otieno)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케냐본부 조정관은 “케냐 북부의 가뭄이 아주 지독한 상황”이라며 “이런 지역은 원체 건조한 지역이기 때문에 옥수수를 포함한 작물 재배와 축산업 전반이 위기에 놓였다”고 우려했다. 
나이로비에 있는 대형 유통업체에서도 옥수수 가루 구하기가 어렵다. 옥수수 가루 대신 밀가루만 잔뜩 진열돼 있다.

케냐 농축산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옥수수 가루 생산량은 720만t으로, 전년보다 13% 가량 줄었다. 자연스레 옥수수 가루의 가격도 치솟았다. 2㎏짜리 소포장된 옥수수 가루는 소매점에서 통상 80~90실링(약 900~1000원)에 판매되지만 물량이 부족하자 일부 지역에선 값이 150~200실링까지 뛰었다. 케냐 정부는 올 상반기부터 옥수수 가루 수십만t을 외국에서 급히 들여오기도 했다. 에디오피아, 잠비아 같은 이웃 국가는 물론 우크라이나에서도 수입했다. 정부는 수입한 옥수수 가루에 보조금을 붙여서 90실링 수준에 유통되도록 했다.
나이로비 재래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옥수수 가루는 물론이고 콩, 밀 가릴 것 없이 작황이 나쁘다”고 이야기했다.


실제 지난 7월 초, 나이로비의 대표적인 유통체인인 나쿠마트(NAKUMATT)를 둘러보니 옥수수 가루를 찾기가 어려웠다. 소포장된 옥수수 가루가 잔뜩 널려있었다던 자리에는 밀가루만 채워져 있었다. 점원 데니스 데구와(Dennis Ndegwa) 씨는 “며칠 전 들어온 웅가는 이틀만에 다 팔렸다. 나이로비 중심지에서도 웅가 유통은 원활하지 않다”고 말했다.

올해 케냐의 옥수수 가루 공식 생산치는 아직 발표되기 전이다. 하지만 기대감은 높지 않다. 케냐의 한 농업 싱크탱크는 최근 “올해 생산량이 작년보다 20% 가량 더 줄어들 것”이라는 다소 비관적인 전망치를 내놓기도 했다.

nyang@heraldcorp.com

※이번 기획보도는 지난 2월, 삼성언론재단이 공모한 기획취재 지원사업 선정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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