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스타그램
  • 뉴스레터
  • 모바일
  • Read
  • 피플
  • ‘태양의 나라’ 사로잡은 한국의 빙수 청년들
  • 2017.08.07.
[리얼푸드=(페루)고승희 기자] 한 겨울 기온이 영상 17도~19도.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에 지친 한국인이라면 선선한 페루 날씨에 “이제 좀 살 만하다”고 느낄 지도 모른다. 페루는 1년 내내 춥지 않은 나라다. 지구 반대편 1박2일의 비행을 견디고, 14시간의 시차를 뛰어넘으면 남미 최고의 미식 여행지로 부상한 페루에 도착하게 된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멀리서 왔습니다.(Venimos Desde Tan Lejos Para Conocerte.)”

이 먼 곳까지 날아간 두 청년이 있다. 대전에서 자라 한화 이글스의 열혈팬인 고교 동창 표지도, 김주엽씨. 1990년생, 올해로 한국 나이 스물여덟 살이 된 두 사람은 페루를 사로잡은 ‘젊은 사업가’다. 두 청년으로 인해 페루엔 없던 디저트가 생겼다. 한국에선 여름마다 만나는 ‘눈꽃 빙수’다.

리마 국제공항에 근무 중인 현지인 마리아 델 삘라르(Maris del Pilar) 씨는 “미스터 빙수(Mr. Bingsu)를 통해 처음으로 빙수를 먹어봤다”며 “페루에는 그동안 빙수라는 디저트가 없었는데, 이 곳이 생긴 이후 페루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개업 2주 만에 페루의 인기 프로그램에까지 소개된 ‘핫 플레이스’다.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 구시가를 거닐다 한 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페루 최초의 빙수 가게. 입구에서부터 익숙한 한국 노래에 낯선 여정에 지친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곳에서 젊은 사업가 표지도 씨를 만났다. 
한국의 20대 젊은 청년 표지도(우), 김주엽(좌) 씨가 운영 중인 페루 최초의 빙수 가게인 ‘미스터 빙수’는 현지 ‘핫플레이스’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사진=리얼푸드]

▶ 눈이 내리지 않는 나라에서 ‘눈꽃빙수’를=표지도 씨가 페루에 첫 발을 디딘 것은 2014년이었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09학번. 교환학생으로 건너온 페루에서 1년간 머무르던 중 더운 나라 페루에는 ‘빙수’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완벽한 ‘블루오션’이었다.

“원래 사업이 하고 싶었어요. 한국에선 이미 모든 방면으로 시장이 꽉 차있잖아요. 페루에 와보니 1년 내내 춥지 않은 이 곳엔 빙수가 없고,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더라고요. 괜찮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에 돌아와 가장 믿을 수 있는 동업자를 찾았다. 대전외국어고등학교에서 함께 스페인어를 전공한 고교동창 김주엽씨. 어느덧 10년의 세월을 함께 한 “막역한 친구”는 이제 든든한 사업 파트너가 됐다.

현재 미스터 빙수에선 한 입 물면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시원한 눈꽃빙수를 종류별로 판매하고 있다. 초코, 딸기, 망고, 멜론, 치즈 등 총 5종류다. 한국에선 흔한 빙수 형태라지만, 페루에선 신세계와 다름 없다. 
미스터빙수에서 판매 중인 초코, 망고, 딸기 빙수 [사진=미스터빙수]

“눈꽃 빙수를 선택한 건 날씨와 리마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다는 부분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어요. 눈꽃 빙수는 눈 형상이잖아요. 이 나라는 눈이 내리지 않아 사람들이 눈을 굉장히 신기해하더라고요. 일단 이목을 끌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한국에서 페루 사람들에게 사전에 빙수를 맛보게 했는데 정말 한 명도 안 빼고 다들 맛있어 하더라고요. (웃음)”

아이템 구상을 끝낸 이후 본격적으로 사업 준비에 돌입했다. 2015년 9월 한국으로 돌아온 뒤, 2016년 1월부터 계획에 착수했다. 꼬박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지인을 사로잡을 ‘맛있는 빙수’를 만드는 일이었다. “둘 다 설빙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 때가 마지막 학기라 좀 바빴는데, 다행히 2016년 8월에 졸업을 하게 됐죠.”

지금 생겨난 이 메뉴들은 한국의 빙수 가게에서도 볼 수 있는 메뉴다.

“현지 과일이 더 맛있고 싸다 보니 생과일을 많이 쓸 수 있다는 게 장점이 됐어요.” 다만 빙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팥빙수’는 메뉴에서 빠졌다. 철저한 ‘현지화’였다.

“단팥은 비쌀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도 나중에 회사가 커지면 한국 전통 메뉴로 내놓고 싶어요. 커피빙수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고요.”
[사진=미스터빙수]

▶ 쉽지 않은 페루 창업기..."남미 전역에 미스터빙수를" =“지구 반대편에서 처음으로 사업을 해보려 하니” 준비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낯선 땅에서의 사업 준비 과정엔 난관이 많았다. 표지도 씨가 교환학생 당시 1년간 머물던 홈스테이 가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표지도 씨에겐 현지에서 자리를 잡을수 있도록 도와준 든든한 투자자이자, 또 다른 가족같은 존재다. “회사 설립을 위한 서류부터, 빙수 기계를 마련하는 일, 현지 비자 사업자 등록, 가게 자리를 알아보는 과정 모두 쉬운 일은 없었는데, 친아들처럼 대해주시고,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지난해 9월 리마에 도착해 가게 장소를 확정하고, 서류 절차를 밟았다. 죽마고우 두 사람은 새벽마다 가게 리모델링을 손수 했다. “돈은 없고 가진 건 몸뚱이 밖에 없으니까요. 가게가 워낙 허름해서 벽을 다 뜯어내 수도공사, 전기공사에 페인트칠까지 했어요. 한 달이 좀 넘게 걸리더라고요.”
[사진=리얼푸드]

2017년 1월 개업을 예정했지만, 날짜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3~4개월이 지연되는 동안 초조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 난관을 넘었다. 지난 4월 2일, 리마 구시가에 마침내 ‘미스터 빙수’(Mr. Bingsu)의 상호가 걸렸다.

낯선 곳에서의 창업이었지만 두 사람의 목표는 확실했다. 표지도 씨는 “한국인을 타깃으로 하지 않고, 현지인을 타깃으로 잡았다”고 말했다. “페루에서 한국인 시장은 정말 작아요. 현지인들이 진짜 맛집으로 생각하는 곳이어야 꾸준히 성공한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입소문이 났다. 개업 2주 만에 페루에서 가장 큰 공영방송에서 촬영도 해갔다. “그게 대박이 났어요. 그 다음날부터 거리까지 줄을 서더라고요. 그리고 좀 쑥스럽지만… 한국의 젊은 남자 둘이 아이스크림 장사를 한다고 소문 나니 젊은 여자분들이 많이 왔어요. (웃음) 새로운 디저트라 신기해서 오는 분들도 많았고요. ” 신기한 디저트에 그쳤다면 현지인들 사이에서 인기 맛집으로 꼽힐 이유도 없다. 누구라도 사로잡을 만한 뛰어난 ‘맛’은 당연히 성공 포인트였다. “페루엔 디저트 종류가 그리 많지 않은 데다 정말 달아요. 저희 빙수는 덜 달아서 좋아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꾸준한 메뉴 개발로 현재 빙수와 함께 달달한 허니브레드까지 선보이며 페루인들의 입맛을 공략하고 있다.

“이번 여름 투자자가 생기면 2호점을 낼 계획이에요. 빠르게 넓혀가고 싶어요. 7년 안에 남미 다른 지역까지 ‘미스터 빙수’가 유명해지면 좋겠어요. 저희, 아직 대박난 거 아니에요. 이제 시작이고, 대박을 위한 첫 걸음이에요.”

shee@heraldcorp.com 

[지금 뜨는 리얼푸드]
저칼로리ㆍ저지방...이런 문구에 숨겨진 것들
나영석도 반한 전주비빔빵, 뭐길래 난리?
페루 스타벅스에만 파는 ‘루쿠마 프라푸치노’가 뭐길래?
여름 제철 과일, 맛있는 온도는 따로 있다?
끈질긴 뱃살, 전문가의 조언 들어라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