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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콜릿은 왜 항상 같은 맛이냐고요?”…신기욱 로스팅 마스터즈 대표
  • 2017.04.19.
[리얼푸드=고승희 기자] 서울의 숨은 ‘벚꽃 명소’로 꼽히는 상수동 당인리 발전소길. 이 길을 만끽하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만나게 된다. ‘로스팅 마스터즈’도 이 곳에 자리잡고 있다.

짙은 녹색문은 꼭 한 번 열고 들어가야할 예쁜 카페처럼 보이지만 ‘로스팅 마스터즈’는 카페는 아니다. “두 명의 청년이 하루 8시간, 주 5회 일했을 때 어느 정도 양의 초콜릿을 생산할 수 있는지, 초콜릿 문외한이 훈련을 통해 얼마 만에 일에 익숙해지는가를 실험하는 연구소예요,” 세 평 정도의 작은 공간에선 월 2000개의 빈투바 초콜릿이 만들어진다. 이 곳에서 진행되는 모든 일은 누군가를 위한 창업 모델이 된다. 로스팅 마스터즈는 프랜차이즈 컨설팅 회사로, 그리다 꿈, 라떼킹, 코나퀸즈 등의 설계를 담당했다. 

신기욱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커피와 초콜릿을 함께 다루고 있다. 빈투바 초콜릿에 있어서는 미개척지에 뛰어든 1세대로, 독보적이라고 할 만하다. 최근 진행된 서울 커피 엑스포와 상수동 로스팅 마스터즈 연구소에서 신기욱 대표를 두 차례 만나 인터뷰했다.

▶ 초콜릿은 왜 항상 같은 맛일까?=“동성끼리 커피 선물을 하면 이 귀한 걸 주냐며 잘 마시겠다고 하는데, 초콜릿을 선물하는 건 바보같이 인식되잖아요. 그건 시장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예요.”

초콜릿 시장은 성장이 더디다. 신기욱 대표에 따르면 2003~2004년 당시 쇼콜라티에(초콜릿 장인)는 1000명 밖에 되지 않는 블루오션이었다. 시장성도 충분해 빠르게 시작하면 장인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된 업계였다. 10여년이 훌쩍 지난 현재, 여전히 같은 숫자의 쇼콜라티에가 존재한다. 해마다 300~400명이 자격증을 따지만 숫자가 늘지않는다. “초콜릿 소비가 일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신기욱 로스팅 마스터즈 대표는 일찌감치 빈투바 초콜릿 업계에 뛰어든 1세대로, 업계 성장을 위해 힘쓰고 있다.

신기욱 대표는 그 이유에 대해 “초콜릿은 나를 위해 사지 않는 상품”이라는 점을 짚었다. 소위 말하는 3대 명절 ‘2월 14일(밸런타인 데이), 3월 14일(화이트데이), 11월 11일(빼빼로 데이)’를 제외하곤 팔리지 않는 시장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한 선물용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요. 초콜릿의 원료가 되는 커버처를 공급하는 회사가 전 세계에 네 군데 밖에 없어요. 소비자는 그 4개사의 원료로 만든 초콜릿을 먹게 되니 아무리 잘 만들어도 비슷한 맛, 변별력이 없는 초콜릿을 먹게 되는 거죠. 맛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으니 굳이 날 위해 사지 않는 거예요.”

전통적으로 초콜릿 공정은 프랑스와 벨기에의 대형 제조사들 몇 곳이 맡았다. 이들은 쇼콜라티에가 사용하는 커버처를 만든다. 커버처는 초콜릿이 유연한 질감을 가지도록 카카오버터를 배합한 것이다.

“재료가 같으니 먹어봐야 똑같은 맛”의 초콜릿을 소비자는 만나게 된다. “재료가 달라져야 소비자도 달라진 맛을 인지할 수 있어요.”

빈투바(from bean to bar) 초콜릿은 카카오빈의 가공부터 제품 생산까지 한 곳에서 이뤄진다. 소규모 수제 생산, 푸드 업계 트렌드인 ‘팜투테이블’(farm to table) 제품이다. 산지별 원재료의 맛을 살리니 만들 때마다 다른 맛을 낼 수 있다.

신기욱 대표는 2014년 초콜릿 업계에도 뛰어들었다. 당시 한국에선 초콜릿을 만드는 기술에 대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로스팅 마스터즈에선 꾸준한 연구를 통해 초콜릿을 생산하고, 1층의 작은 공간에서 판매를 겸한다. 월 1000개, 만만치 않은 양이 팔려나간다. “처음엔 사람들이 먹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로스팅 마스터즈’의 초콜릿을 맛 본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맛”, “다크 초콜릿인데도 쓰지 않은 맛”이라며 놀라워한다. 로스팅 마스터즈에선 코스타리카 카카오협회 회장과 함께 농업 엔지니어를 현장에 보내 돌림병이 돌아 다 죽어버렸던 중남미 카카오 농장의 나무를 되살렸다. 50년 이상 된 나무에서 난 카카오로 만들어진 초콜릿이 바로 말레쿠. 2016년 ‘인터내셔널 초콜릿 어워즈’에서 마이크로 바치 다크 플레인 초콜릿 바 부문 동상을 받았다. 당연히 한국 최초다.

“월 1000개 이상 나간다는 것은 일상적 소비가 없다는 것은 아니에요. 가능성이 있다는거죠. 빈투바 초콜릿은 장인정신을 가지고 재료를 다루는 식품 분야예요. 보는 초콜릿이 아닌 먹는 초콜릿을 만드는 겁니다. 나를 위해 먹는 초콜릿을 만들어야 시장이 성장하게 돼요.”


▶ ‘로컬푸드’, ‘공정무역’…‘가치상품’ 빈투바 초콜릿=지금 빈투바 초콜릿은 전 세계 시장의 트렌드로 부상 중이다. 신 대표는 빈투바 초콜릿이 성장한 이유로 ‘로컬푸드 붐’을 꼽았다.

“서구에선 삶의 가치를 좋게 바꾸기 위한 방식들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어요. 로컬푸드 붐도 마찬가지예요. 초콜릿, 유제품, 커피 등은 로컬에서 생산한 것으로 만든 대표적인 식품이잖아요. 로컬푸드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믿을 수 있는 재료로 내 눈 앞에서 아무 것도 첨가되지 않은 제품이 완성된다는 거죠. 초콜릿과 커피는 그 모든 과정이 가장 투명하게 보여지는 상품이고요.”

재료(카카오빈)의 생산지, 유통경로, 제조사의 추적이 가능한 데다, 제조과정에서 인공적인 향이나 첨가제를 넣지 않으니 소비자의 입장에선 보다 정직하고 건강한 초콜릿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빈투바 초콜릿은 소비만으로 생산자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 상품’에 가깝다.

“독점 자본과의 경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치를 만드는 일이에요. 대기업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시장을 만드는 거예요. 작은 크기의 섬세한 시장을 열기는 어려워요. 현지에서 농민들을 직접 만나고, 농장의 환경을 조사하고, 카카오가 오염물질을 배출하지는 않는지를 살펴야 해요. 또 농민들의 노동이 착취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중간 착취자가 존재해 이들의 수입이 새나가지는 않는지 확인하면서 농민과 균형있는 성장을 하도록 하고 있어요. 저희가 가장 중요하세 생각하는 것은 소셜 임팩트거든요.”

빈투바 초콜릿의 진짜 가치는 여기에 있다. 공정무역을 통해 생산자들의 삶의 질 개선을 돕는다. 로스팅 마스터즈는 함께 일하는 산지 농민들에게 국제 시세의 50%를 더 주고 있다. 카카오의 국제 시세는 3달러. 중간 매입업체가 2달러, 수집상이 1달러에 산다고 한다. 신 대표는 농민들이 1달러에 팔던 것을 5달러에 사고 있다.

“카카오를 싸게 사는 건 얼마든지 가능해요. 하지만 좋은 카카오를 구하는 것은 힘들죠. 농민들과의 동반성장을 통해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구하는 거예요. 그것이 결국 상품 가치를 높여 더 좋은 제품을 만들게 하는 일이에요. 저희 같은 소기업은 사회적 기업은 아니지만, 가치를 가질 만큼 깨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우리가 만드는 좋은 제품을 지킬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니까요.”

shee@heraldcorp.com

[사진=로스팅 마스터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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