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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강한 식재료 찾아 삼만리…‘식품 사막’ 아세요?
  • 2016.12.20.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우리나라 서해 최북단에 자리하고 있는 백령도에서는 몇해전까지만 해도 우유나 과일처럼 유통기한이 짧은 신선식품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지리적으로 육지와 떨어져 있는 데다 인구도 많지 않아 신선식품을 공급할 업체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사진=123rf]
백령도처럼 인근에 유통업체가 귀해서 건강한 식재료를 구하기 어려운 곳을 ‘식품 사막’(Food Desert)라고 한다. 전기, 수도, 가스 등은 인간 생활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필수 공공재’로 분류해 정부 혹은 공기업이 공급을 관리하지만, 정작 인간 생명 유지에 가장 필수적인 식품은 그렇지 않다. 배급제를 실시하는 공산권 국가가 아니고서는 대체로 민간 영역에 맡겨져 있어서 자연스레 공급 공백 지역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나마 한국은 면적이 좁고 인구 밀집도가 높아 이러한 문제가 두드러지지 않지만, 미국처럼 땅이 넓고 인구 밀도가 낮은 곳에서는 심각한 상황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식품 사막의 문제를 짚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와 업계 차원의 노력을 소개했다.

식품 사막은 주로 시골 지역이나 상점이 철수한 도시 중심 시가지에서 나타난다. 미국에서는 식품 사막을 ▲ 반경 400m 이내에 슈퍼마켓이 없고 ▲ 중위가구 소득이 연방 빈곤선의 185% 미만이고 ▲ 30% 이상의 가구가 차가 없으며 ▲ 건강식품지수가 낮은 지역이라 정의하고 있다. 미 농무부에 따르면 2350만 명의 미국인이 저소득 지역에 살고 있으며, 1150만 명이 빈곤선 이하의 소득을 갖고 있다.

[사진=123rf]
유통업체가 이들 지역에 진출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수익성이 낮기 때문이다. 거주민 대부분이 저소득층이어서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지극히 시장 논리적 발상에 따른 것이다. 미국의 저소득층은 주로 보충영양지원프로그램(SNAPㆍ일명 ‘푸드 스탬프’)이라 불리는 복지수당을 지급받아 먹는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수당이 많지 않아 대체로 값싼 가공식품 위주로 사게 된다. 이에 업체들이 발을 빼면 저소득층의 정크푸드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마리 갤러거라는 식품 사막 연구자가 2014년 아이오와 시골 지역을 연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통업체에 대한 접근권이 보장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성인들의 비만도는 높아진 반면 키는 줄어들었다. 또 아이들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물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안은 소득불균형을 개선하는 것이겠지만, 그 시점까지 무작정 식품 사막을 방치할 수도 없다. 유통업체가 들어서게 함으로써 그곳의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오아시스는 만들어줘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것이다. 실제 앞서 언급한 백령도의 경우 2010년 무렵 편의점이 들어서면서 우유나 과일 등을 공급해 사막 상태가 다소나마 해소됐다.

미국에서도 정부와 유통업체들이 식품 사막을 막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왔다. 가령 2011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영부인인 미셸 오바마는 건강한 식습관 형성을 목표로 진행하는 캠페인을 통해 식품 사막 지역에 1500개의 점포를 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정부가 업체의 자금 모금을 지원함으로써 매장 개설을 유도하려는 것이었다.

월마트, 월그린 부츠 얼라이언스, 슈퍼발루 등 여러 유통업체들이 동참했지만 성적은 저조했다. 올해 초 월마트는 ‘경영 효율성’을 이유로 미국 내에서 154개의 매장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그 중 상당수가 식품 사막 지역에 위치한 것이었다. 월마트에 이어 2위 슈퍼마켓 체인인 크로거도 필수적인 상품만을 갖춘 ‘룰러 푸즈’(Ruler Foods)라는 실험 매장을 중서부 시골 지역에 냈지만 현재까지는 성적이 좋지 않다. 로드니 맥멀렌 크로거 회장은 올 초 투자자들에게 “투자 대비 소득이 보장되는 경제적 모델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진전이 있었지만 아직 목표 달성은 못했다”라고 실토했다.

[사진=룰러 푸즈 매장]
실패의 원인은 여러가지로 분석된다. 해당 지역 주민의 소비 여력이 낮아서일수도 있지만, 아예 소비할 시간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저임금, 저숙련 노동자일수록 여러 개의 일자리를 갖고 있거나 장시간 근로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신선한 식재료를 사서 요리를 하는 것 자체가 사치일 수 있다.

이에 식품 배달 업체들의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가령 ‘프레시다이렉트’(FreshDirect)라는 온라인 식품 배달 업체는 당초 주 고객이 고소득 도시 미식가들이었지만, 2년 전 뉴욕 브롱크스 자치구의 저소득 지역에 파일럿 서비스 형식으로 식품 배달 사업을 시작했다. 이 업체는 배달원들이 휴대용 카드단말기를 들고 다니면서 저소득 계층이 SNAP 복지카드로 바로 결제할 수 있게끔 했다. 다른 업체들은 아예 카드단말기도 필요없이 복지카드로 온라인에서도 결제가 가능하게끔 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아예 수익성이라는 전제 자체를 무너뜨려버린 업체도 있다. 텍사스 오스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유기농 식품 전문업체 ‘홀푸즈’(Whole Foods)는 자선 기부를 받는 재단을 통해 자금 지원을 받는 형태의 매장을 뉴올리언스나 시카고 등의 저소득 지역에 열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세제 혜택까지 더해지면서 지속가능한 운영이 가능하게 됐다.

물론 유통업체가 들어선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웰빙을 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여건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이용할 수 없는 오아시스로 전락할 수도 있다. 마리 갤러거 컨설턴트는 이 점을 인정하면서도 “최소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며 “건강한 음식에 접근할 수 없으면 살 수도 없다”라고 말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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